이야기로 배우는 우리 역사 · 강사용 마스터 대본 · 📚 목차

7차시 · 잃음과 되찾음 —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

지금은 80분 전체판 — 알아두실 내용까지 전부 담은 준비용 마스터입니다.
이 문서 읽는 법

차시 개요

학습 목표① 나라를 잃는다는 것이 주권·언어·이름을 잃는 것임을 이해한다 ② 되찾으려는 노력의 여러 갈래(만세·정부 수립·의거·말과 글 지키기)를 안다 ③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임시정부에서 시작됐음을 안다
핵심 키워드일제강점기(1910~1945) · 3·1운동(1919) · 유관순 · 대한민국 임시정부 · 안중근 · 조선어학회 · 을사늑약 · 이토 히로부미 · 독립군
이 차시의 뼈대"빼앗긴 것은 땅만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였다 — 그래서 지킨 방법도 총만이 아니라 만세로, 정부로, 말과 글로, 여러 갈래였다."
진행 톤(중요)비장하게 몰지 말고 담담하게 사실을 전달 — 분노를 가르치는 시간이 아니라 "무엇을 지키려 했는가"를 스스로 찾게 하는 시간 (원장 시안의 진행 팁 유지)
준비물연표 판서 공간, 사진(태극기·유관순·안중근·임시정부 청사·조선말 큰사전 원고), 개념서
시간 설계80분판 도입(300년 다리)8 → 나라를 빼앗기다18 → 3·1운동과 임시정부16 → 말과 글을 지킨 사람들14 → 세계6 → 정리15 → 마무리3
50분판 도입4 → 빼앗기다10 → 3·1운동11 → 말과 글8 → 세계4 → 정리10 → 마무리3
① 도입 · 80분판 0~8분 · 50분판 0~4분

300년을 건너서 — 세상이 뒤바뀐 시대

목표: ★6차시(1592)와 7차시(1910) 사이의 300년 공백에 다리를 놓고(2~3분), "말과 이름을 빼앗긴다면"이라는 원장 시안의 좋은 도입 질문으로 들어간다.

도입 진행

▶ 진행 골격
  • ★300년 다리: 임진왜란 후 조선은 300년을 더 이어감 → 그 사이 서양에서 기계 문명(증기선·기차·신무기)이 폭발 → 일본은 그 문명을 재빨리 배워 힘을 키움, 조선은 문을 늦게 엶 → 힘의 저울이 기울어짐.
  • 원장 시안의 도입 질문(유지): "어느 날 학교에서 우리말을 못 쓰게 하고, 여러분 이름을 다른 나라식으로 바꾸라고 한다면?"
  • 공개: 실제로 있었던 35년 — 일제강점기(1910~1945). [판서: 일제강점기 1910~1945]
  • 오늘의 두 기둥 예고: 무엇을 잃었나 / 어떻게 되찾으려 했나.
샘플 대본 펼치기 — 도입 완성본

지난 시간 이순신 장군이 지켜낸 조선은 그 뒤로 300년을 더 이어가요. 그런데 그 300년 사이에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어요. 서양에서 기계 문명이 폭발한 거예요. 증기로 움직이는 배와 기차, 공장, 그리고 훨씬 강력해진 무기들. 이웃 일본은 이 새 문명을 재빨리, 통째로 배워서 힘을 확 키웠어요. 조선도 뒤늦게 문을 열고 따라가려 했지만, 그 몇십 년의 차이가 힘의 저울을 기울여 버렸어요. 200년 평화 뒤에 임진왜란이 왔던 것 기억나죠? 역사가 다시 한 번, 이번에는 훨씬 크게 그 장면을 반복해요.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질문 하나만 할게요. 만약에 어느 날 갑자기 — 학교에서 우리말을 쓰면 벌을 받고, 여러분의 이름을 다른 나라식으로 바꾸라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답 받기 — 충분히 듣기]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죠. 그런데 이게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나라에 있었던 일이에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 동안, 우리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어요. 이 시기를 일제강점기라고 해요. [판서: 일제강점기 1910~1945] 오늘은 두 가지를 볼 거예요.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되찾으려 했는지. 오늘 이야기는 무겁지만, 화내는 시간이 아니라 — 그 시절 사람들이 목숨 걸고 지키려 한 게 뭐였는지 찾아내는 시간이에요.

📘 강사용 배경지식 — 300년 다리, 어디까지 알고 계시면 되나
  • 이 커리큘럼은 조선 후기(영·정조, 실학, 세도정치)와 개항기(강화도조약 1876, 동학농민운동·갑오개혁 1894, 대한제국 1897)를 정식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이 도입 2~3분이 유일한 다리이므로 "서양 기계 문명 → 일본의 빠른 근대화(메이지 유신) → 힘의 역전"이라는 뼈대만 정확히 전달하면 충분합니다.
  • "조선이 게을러서 뒤처졌다"는 프레임은 피하세요 — 내부 개혁 시도(개화파, 대한제국의 근대화 사업)도 있었으나 시간과 국제 정세가 불리했다는 것이 균형 잡힌 서술입니다. 아이가 "왜 조선은 빨리 안 배웠어요?" 물으면: "배우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라 안 다툼과 주변 강대국들의 방해 속에 시간이 모자랐어요."
  • 국호 참고: 1897년부터는 정식 국호가 '대한제국'이었으므로, 엄밀히는 1910년에 빼앗긴 나라는 대한제국입니다. 초등 수업에서는 혼란을 피해 '조선/우리나라'로 통칭하되, 질문이 나오면 "조선이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의 나라를 선포했었어요 — '대한'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와요"라고 답하면 8차시 국호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② 강의 1 · 80분판 8~26분 · 50분판 4~14분

단계적으로 빼앗긴 나라 — 그리고 하얼빈의 총성

목표: 국권 피탈이 하루아침이 아니라 단계적이었음을 잡고(1905 외교권 → 1910 병합), ★안중근 의거(1909)를 정확한 자리(병합 직전)에 배치한다. 그리고 "잃은 것의 목록"(주권·말·이름)으로 마무리.

㉮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 1905년과 1910년

▶ 진행 골격
  • 비유로 시작: "나라를 빼앗는 건 도둑이 담 넘듯 한 번에 오지 않았다 — 방 한 칸씩 차지하듯 단계적으로."
  • 1905년 을사늑약: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다른 나라와 스스로 약속할 권리)을 강제로 빼앗음 — "나라의 입을 막은 것." 강제로 맺어진 조약이라 '늑약'이라 부름.
  • 황제의 마지막 호소(80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에 몰래 특사를 보내 "이 조약은 강제였다"고 세계에 호소(1907) — 그러나 열강들은 외면했고, 일본은 이를 구실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킴. "세계가 우리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냉정한 현실.
  • 1910년 국권 피탈: 나라를 다스릴 권리(주권) 전부를 빼앗김 — 대한제국이 지도에서 사라짐.
샘플 대본 펼치기 — 단계적 피탈 완성본

나라를 빼앗긴 건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었어요. 도둑이 담을 훌쩍 넘듯 한 번에 온 게 아니라, 남의 집에 들어와 방을 한 칸씩 차지하듯 단계적으로 진행됐어요.

결정적인 첫 단계가 1905년이에요.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아요. 외교권이 뭐냐면, 다른 나라와 스스로 약속하고 거래할 권리 — 말하자면 나라의 '입'이에요. 이제 대한제국은 세계를 향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 거예요. 이 조약을 을사늑약이라고 하는데, '늑'자가 '억지로'라는 뜻이에요. 정상적인 약속이 아니라 궁궐을 군대로 둘러싸고 강제로 맺게 한 조약이라서, 이름부터 '강제로 맺은 조약'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황제였던 고종은 마지막 방법을 써요.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세계 여러 나라가 모이는 평화 회의가 열리자, 몰래 특사 세 명을 보내요. "을사늑약은 강제로 맺어진 것이니 무효다"라고 세계에 호소하려 한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됐을까요? 열강들은 회의장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어요. 힘없는 나라의 호소를 세계는 외면했고, 일본은 오히려 이 일을 구실로 고종 황제를 강제로 물러나게 해요. 씁쓸하지만 이게 그 시대 국제 사회의 민낯이었어요 — 3차시에서 배웠죠. 세상에 공짜 편은 없다.

그리고 1910년. 일본은 마지막 남은 것까지 가져가요. 나라를 다스리는 권리, 주권 그 자체를요. 이로써 대한제국이라는 나라가 세계 지도에서 지워졌어요. 이게 국권 피탈 — 나라의 권리를 빼앗겼다는 뜻이에요.

㉯ 하얼빈의 총성 — 안중근 (1909, 병합 직전)

▶ 진행 골격
  • ★시점 정확히: 을사늑약(1905) , 병합(1910) 인 1909년의 일 — "나라가 완전히 넘어가기 직전, 그것을 막으려던 사람."
  • 안중근이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을사늑약을 주도하고 대한제국 통치를 지휘한 일본 최고 실력자)를 처단.
  • 안중근이 법정에서 밝힌 것: 나는 살인자가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중장, 이것은 전쟁 중의 작전 — 이토의 죄 15가지를 조목조목 열거.
  • 심화(80분): 거사 전 동지들과(안중근 포함 12인) 약지를 끊어 태극기에 "대한독립" 혈서(단지동맹) / 옥중에서 『동양평화론』 집필 — 그는 일본 '국민'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과 싸웠고, 동양의 평화를 꿈꿨다.
  • 담담한 정리: 사형 판결 앞에서도 당당했던 서른한 살 — "무엇을 지키려 했는가"를 아이들에게 묻기.
"나라요" "우리나라의 권리요" — 어떤 답이든 받아 주고, "안중근 의사는 '동양의 평화'라고도 답했어요"를 더해 폭을 넓혀 주기.
샘플 대본 펼치기 — 안중근 완성본

나라가 완전히 넘어가기 직전인 1909년, 그 흐름을 막으려던 사람이 있었어요. 안중근. 그가 겨눈 상대는 이토 히로부미 — 을사늑약을 주도했고, 그 뒤 대한제국 통치를 총지휘한 일본 최고 실력자예요. 우리나라를 빼앗는 설계자였던 셈이죠.

1909년 10월 26일, 만주의 하얼빈 기차역. 러시아 관리들을 만나러 온 이토 히로부미가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환영 인파 속에서 안중근이 앞으로 나서며 총을 쏩니다. 쏜 총알 가운데 세 발이 이토에게 명중해요. 안중근은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만세를 외치고 체포돼요.

더 놀라운 건 재판정에서의 모습이에요. 안중근은 이렇게 주장해요. "나는 살인자가 아니다. 나는 대한의군의 참모중장이고, 이것은 나라를 침략한 적장을 향한 전쟁 중의 작전이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가 저지른 죄 열다섯 가지를 조목조목 열거해요. 황제를 강제로 물러나게 한 죄, 조약을 강제로 맺은 죄,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이분이 어떤 각오였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어요. 거사 몇 달 전, 동지 열한 명과 함께 — 안중근까지 모두 열두 명이 — 왼손 넷째 손가락 한 마디를 끊어, 그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 네 글자를 썼어요. 그리고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면서는 『동양평화론』이라는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 한국, 중국, 일본이 서로 침략하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방법에 대한 책인데, 끝내 다 쓰지 못한 채 순국하셨어요. 안중근 의사가 미워한 건 일본 사람들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이었던 거예요.

안중근 의사는 이듬해 사형을 당해요. 서른한 살이었어요. 자, 담담하게 물어볼게요. 이분은 목숨을 잃을 걸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요? 무엇을 지키려고요? [충분히 듣기]

㉰ 잃은 것의 목록 — 주권, 그리고 말과 이름

▶ 진행 골격
  • 나라를 잃는다 = 땅만 잃는 게 아니다 (원장 시안 구조 유지): 학교에서 일본어가 '국어'가 되고, 우리 역사를 못 배우게 하고, 나중엔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꾸게 함.
  • 꿰뚫는 질문: "말, 역사, 이름 — 이 셋의 공통점은?" → 전부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루는 것들.
  • 결론: 일본이 노린 것은 땅 위의 사람들이 "우리"라는 걸 잊게 만드는 것 — 그래서 되찾는 싸움도 총으로만 하는 게 아니게 된다(다음 강의 예고).
샘플 대본 펼치기 — 잃은 것의 목록 완성본

1910년 이후의 35년이 어땠는지 볼게요. 나라를 빼앗긴다는 건 땅에 다른 나라 깃발이 꽂히는 것만이 아니었어요. 학교에서 '국어' 시간에 배우는 말이 일본어가 돼요. 우리말은 조선어라는 과목으로 밀려났다가 나중엔 그 시간마저 없어져요. 우리 역사는 아예 못 배우게 해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 도입에서 상상해 봤죠 —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꾸게 해요.

자, 탐정 질문. 말, 역사, 이름. 일본은 왜 하필 이 셋을 빼앗으려 했을까요? 이 셋의 공통점이 뭘까요? [답 받기] 그래요. 이 셋은 전부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루는 것들이에요. 말이 같고, 지나온 이야기가 같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 — 그게 '우리'잖아요. 일본이 노린 건 땅이 아니라 그 '우리'라는 감각 자체를 지우는 거였어요. 한 세대만 지나면 빼앗긴 줄도 모르게요.

그렇다면요 — 되찾는 싸움도 총으로만 하는 게 아니게 돼요. 빼앗긴 게 말과 역사와 이름이라면, 그것을 지키는 것 자체가 싸움이 되는 거죠. 이 말 기억해 두세요. 오늘 뒤에서 아주 중요해집니다.

📘 강사용 배경지식 — 연표와 용어 정확성
  • 핵심 연표: 1905 을사늑약(외교권 박탈) → 1906 통감부 설치(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 → 1907 헤이그 특사·고종 강제 퇴위·군대 해산 → 1909 안중근 의거(하얼빈) → 1910 한일 병합(국권 피탈). ★원장 초안은 안중근을 병합 이후 이야기 속에 배치했는데, 의거는 병합 입니다 — 이 대본은 "병합 직전, 그것을 막으려던 사람"으로 정확히 재배치했습니다.
  • 호칭 관례: 안중근·윤봉길처럼 무력 의거로 순국한 분은 의사(義士), 유관순·이준처럼 맨몸의 항거로 순국한 분은 열사(烈士)로 구분해 부르는 것이 관례입니다 — 아이 질문 단골.
  • 창씨개명·우리말 사용 금지 등 '민족 말살' 정책은 1930년대 말~40년대(전시 체제)에 집중된 것으로, 35년 내내 같은 강도였던 것은 아닙니다. "갈수록 심해져서 마지막엔 이름까지"라는 서술이 정확합니다.
  • '일제강점기'라는 용어 자체가 "일본 제국이 강제로 점령한 시기"라는 뜻 — '일제시대'보다 정확한 표준 용어입니다.
  • 대본의 독립선언서 인용("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된 나라이며…")은 원문("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을 초등 눈높이 현대어로 풀어 쓴 것입니다 — 뜻은 같지만 원문 그대로는 아니라는 점을 알아두세요.
③ 강의 2 · 80분판 26~42분 · 50분판 14~25분

1919년 3월 1일 — 맨손의 만세, 그리고 '대한민국'의 탄생

목표: 3·1운동을 "무기 없는 전 민족의 선언"으로 잡고, 그 열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이며 ★지금 나라 이름 '대한민국'이 여기서 시작됐음을 심는다(8차시 복선).

㉮ 온 나라가 일어선 날

▶ 진행 골격
  •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 낭독 —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된 나라임을 선언한다."
  • 손에 든 것은 무기가 아니라 태극기 — 전국 방방곡곡, 남녀노소 약 두 달간 만세 행진이 들불처럼 번짐. [판서: 3·1운동 1919]
  • 유관순: 열여섯 살 학생 — 학교가 문 닫자 고향 천안으로 내려가 아우내 장터의 만세운동을 조직, 감옥에서도 만세를 부르다 순국.
  • 일제의 폭력 진압(담담하게, 수위 조절) — 그럼에도 이 운동이 남긴 것: 온 세계에 "한국인은 독립을 원한다"를 알림.
샘플 대본 펼치기 — 3·1운동 완성본

나라를 빼앗기고 9년이 지난 1919년 3월 1일.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모여 한 장의 글을 읽어요. 독립선언서 —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된 나라이며 조선 사람이 그 주인임을 선언한다." 빼앗겼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온 민족의 공식 선언이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요. 손에 든 건 총도 칼도 아니고 — 태극기였어요. "대한독립 만세!" 이 만세 소리가 서울에서 시작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두 달 넘게 들불처럼 번져요. 학생도, 농부도, 상인도, 할아버지도, 여러분만 한 아이들도 함께였어요. [판서: 3·1운동 1919]

그중에 유관순이라는 학생이 있었어요. 열여섯 살, 지금의 고등학교 1학년 나이예요. 만세운동으로 학교가 문을 닫자, 유관순은 독립선언서를 몸에 숨기고 고향 천안으로 내려가요. 그리고 아우내 장터에서 어른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조직해요. 그날 현장에서 부모님을 모두 잃고 자신은 감옥에 갇히는데 — 감옥 안에서도 만세를 멈추지 않았어요. 그리고 끝내 감옥에서 순국하셨어요. 열여덟 살이었어요.

일제는 이 맨손의 만세를 총칼로 짓눌렀어요.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감옥에 갇혔어요. 그럼 이 운동은 실패였을까요? 아니에요. 이 두 달의 만세가 남긴 게 있어요. 첫째, 온 세계의 신문에 실렸어요 — "한국인들은 독립을 원한다"는 사실을 지구가 알게 된 거예요. 그리고 둘째, 훨씬 더 큰 열매가 하나 열리는데 — 그게 바로 다음 이야기예요.

㉯ 만세의 열매 — 대한민국 임시정부

▶ 진행 골격
  • 3·1운동 직후(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 "나라를 빼앗겼어도 정부를 세워 독립운동의 사령탑으로 삼자."
  • ★국호의 탄생: 이때 정한 나라 이름이 대한민국 — '대한'은 대한제국에서, '민국'은 백성이 주인인 나라라는 뜻. 황제의 나라가 아니라 국민의 나라로!
  • 임시정부가 한 일: 독립운동 지휘·자금 모금·외교 활동, 그리고 훗날 광복군(정식 군대) 창설(1940) — 김구 선생의 한인애국단이 일으킨 윤봉길 의거(1932)로 세계의 주목을 받음.
  • 8차시 복선 명시: "지금 우리나라 이름이 왜 대한민국인지 — 그 답이 1919년 여기에 있다. 다음 시간에 이 실이 끝까지 이어진다."
샘플 대본 펼치기 — 임시정부 완성본

3·1운동이 있고 바로 다음 달,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중국 상하이에 모여요. 그리고 결심해요. "나라 땅은 빼앗겼지만, 정부를 세우자. 흩어진 독립운동을 지휘할 사령탑을 만들자." 그렇게 세워진 것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예요.

여기서 오늘 수업에서 제일 중요한 순간이 나와요. 정부를 세우려면 나라 이름부터 정해야겠죠? 이때 지도자들이 정한 이름이 — 대한민국이에요. 어디서 많이 들어봤죠? [아이들 반응] 맞아요, 지금 우리나라 이름! 뜻을 풀어볼게요. '대한'은 빼앗긴 나라 대한제국에서 가져왔어요 — 그 나라를 잇는다는 뜻. 그런데 뒤가 달라요. '제국'이 아니라 '민국' — 황제의 나라가 아니라 백성이 주인인 나라라는 뜻이에요. 나라를 되찾으면, 그 나라는 임금님의 나라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나라로 만들겠다고 — 1919년에 벌써 선언한 거예요.

임시정부는 이후 광복까지 26년 동안 독립운동의 중심이 돼요. 자금을 모으고, 세계에 우리 사정을 알리고, 흩어진 독립운동가들을 이어줬어요. 1932년에는 김구 선생이 이끈 한인애국단의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에서 의거를 일으켜 전 세계와 중국의 주목과 지원을 얻어냈고, 1940년에는 광복군이라는 정식 군대까지 만들어요. 빼앗긴 나라가 정부와 군대를 갖춘 거예요.

기억해 두세요. 지금 우리나라 이름이 왜 대한민국인지 — 그 답이 1919년 상하이에 있어요. 이 실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다음 마지막 시간에 확인하게 됩니다.

🌱 돌발질문 대비

"만세만 불러서 뭐가 달라져요?" → "그날 당장 나라가 돌아오진 않았어요. 하지만 두 가지가 달라졌어요 — 세계가 알게 됐고, 임시정부가 태어났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우리 스스로 확인한 거예요. 싸움에는 총으로 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유관순은 왜 감옥에서 나왔는데도 또 만세를 불렀어요?" → 사실 교정 겸: "감옥에서 나온 게 아니라, 감옥 안에서 3·1운동 1주년에 다시 만세를 불렀어요. 더 심한 벌을 받을 걸 알면서도요. 그만큼 그 마음이 벌보다 컸던 거예요."

"다른 나라들은 안 도와줬어요?" → "그때는 강한 나라들이 서로의 식민지를 눈감아 주던 시대라, 어느 나라도 우리를 위해 나서지 않았어요. 헤이그에서도 그랬죠. 그래서 독립운동가들은 '우리 힘으로 준비하되, 세계의 흐름이 바뀌는 순간을 놓치지 말자'고 한 거예요. 그 순간이 언제 오는지는 다음 시간에 나와요."

④ 강의 3 · 80분판 42~56분 · 50분판 25~33분

총 대신 사전을 든 사람들 — 말과 글, 역사를 지킨 독립운동

목표: ★원장 초안에서 비어 있던 자리를 채우는 이 차시의 신설 기둥. "빼앗긴 것이 말과 이름이라면, 지키는 것도 독립운동"이라는 앞의 복선을 회수한다. 5차시(한글)와 직결.

㉮ 조선어학회 — 사전을 만드는 것이 싸움이 되다

▶ 진행 골격
  • 복선 회수: "일본이 지우려던 게 말·역사·이름이라 했죠 — 그렇다면 그것을 지키는 일도 독립운동이 됩니다."
  • 조선어학회: 학자들이 모여 한글 맞춤법을 정리하고, 사라져 가는 우리말 낱말을 전국에서 모아 『조선말 큰사전』 편찬에 착수 — "말이 담긴 금고를 만드는 일."
  • 지금의 한글날도 이분들이 일제강점기에 만든 기념일(1926년 시작) — 5차시 회수: "세종이 만든 글자를, 500년 가까이 지난 뒤의 후손들이 목숨 걸고 지킨 것."
  •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일제가 학자 수십 명을 "사전 만들기 = 독립운동"이라며 체포·투옥, 옥중 순국자까지 — 역설적으로 일제 스스로 "말을 지키는 것이 독립운동"임을 인정한 셈.
  • 기적의 후일담(80분): 학자들이 빼앗겼던 원고 2만 6천여 장이 광복 직후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 — 그 원고로 광복 후 사전이 완성됨. "말의 금고가 살아남은 것."
샘플 대본 펼치기 — 조선어학회 완성본

아까 선생님이 기억해 두라고 한 말 있죠. 일본이 지우려던 게 말과 역사와 이름이라면, 그것을 지키는 일 자체가 싸움이 된다고요. 이제 그 싸움 이야기예요. 이 싸움의 무기는 총이 아니라 — 놀라지 마세요 — 사전이었어요.

조선어학회라는 학자들의 모임이 있었어요. 이분들이 한 일을 보면 처음엔 시시해 보일 수 있어요. 한글 맞춤법을 정리하고, 전국을 돌며 사라져 가는 우리말 낱말들을 모으고, 그걸로 『조선말 큰사전』이라는 사전을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학교에서 우리말을 가르치지 않으면, 한 세대만 지나면 말이 흐려지고, 두 세대가 지나면 사라져요. 사전은 그 말을 통째로 담아 두는 금고예요. 나라를 되찾는 날, 아이들에게 돌려줄 우리말을 금고에 채워 넣고 있었던 거죠. 참, 여러분이 아는 한글날도 이분들이 이 시대에 만든 기념일이에요. 5차시에서 배운 세종대왕의 글자를, 거의 500년 뒤의 후손들이 이렇게 지킨 거예요.

일제는 이걸 어떻게 봤을까요?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 학자 수십 명을 잡아 가둬요. 죄목이 뭐였는 줄 알아요? "사전을 만드는 것은 독립운동이다." 학자들은 모진 고문을 받았고, 두 분은 감옥에서 돌아가셨어요. 슬픈 이야기지만, 뒤집어 보면 일제 스스로 인정한 거예요 — 말을 지키는 것이 총을 드는 것만큼 무서운 독립운동이라는 걸요.

이 이야기에는 기적 같은 뒷이야기가 있어요. 학자들이 잡혀갈 때 사전 원고 2만 6천여 장도 증거물로 빼앗겼는데, 광복이 되고 나서 그 원고 뭉치가 서울역 창고에서 고스란히 발견돼요. 학자들은 그 원고를 끌어안고 울었대요. 그리고 그 원고로 광복 후에 진짜 『큰사전』이 완성돼요. 말의 금고가 끝내 살아남은 거예요. 지금 여러분이 쓰는 국어사전들의 조상이 바로 이 사전이에요.

(80분판 심화) 여러 갈래의 싸움 — 독립군, 그리고 역사와 문학

▶ 진행 골격
  • 만주의 독립군: 나라 밖에 무장 부대를 길러 봉오동·청산리에서 일본군에 큰 승리(1920) — 홍범도·김좌진.
  • 역사를 지킨 사람들: 감옥에서, 망명지에서 우리 역사를 써서 남긴 학자들(신채호 등)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정신.
  • 시로 싸운 사람들: 윤동주 — 일본 유학 중에도 우리말로 시를 쓰다 옥중 순국. "우리말로 시를 쓰는 것조차 죄가 되던 시대."
  • 종합: 만세로, 정부로, 총으로, 사전으로, 시로 — 자기 자리에서 자기 무기로 싸운 사람들의 총합이 독립운동.
샘플 대본 펼치기 — 여러 갈래의 싸움 완성본

이 시대의 싸움이 얼마나 여러 갈래였는지 조금만 더 볼게요. 만주 벌판에서는 독립군 부대들이 자랐어요. 1920년에는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홍범도,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이 정규 일본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둬요. 빼앗긴 나라의 군대가 이긴 거예요.

펜으로 싸운 분들도 있어요. 신채호 같은 역사학자는 감옥에서까지 우리 역사를 썼어요. 일본이 우리 역사를 못 배우게 했으니, 역사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저항이었던 거죠. 그리고 윤동주라는 젊은 시인은 그 시대에 끝까지 우리말로 시를 썼어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들어봤죠? 윤동주는 일본 유학 중에 체포되어 광복을 반년 앞두고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요. 우리말로 시를 쓰는 것조차 죄가 되던 시대였던 거예요.

자, 이제 보이죠? 만세를 부른 사람, 정부를 세운 사람, 총을 든 사람, 사전을 만든 사람, 시를 쓴 사람. 독립운동은 한 가지 모양이 아니었어요.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가진 무기로 — 그 모든 싸움을 합친 것이 독립운동이에요. 여러분이라면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싸웠을 것 같아요? [가볍게 두어 명]

독립군·신채호·윤동주 블록은 80분판 전용입니다. 50분에서는 조선어학회 하나로 "말을 지킨 싸움"을 대표시키는 것이 깊이가 삽니다. ★이 강의 3 전체가 원장 초안에서 시간표가 비어 있던 자리(28~35분 공백)를 채우기 위해 신설된 기둥입니다 — 주제(주권·언어·이름)와 정확히 맞물리도록 설계했습니다.
📘 강사용 배경지식 — 조선어학회 파트 정확성 노트
  • 조선어학회: 1931년 조선어연구회에서 개칭(뿌리는 1921년, 더 멀리는 주시경의 국문 연구).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 표준어 사정(1936), 『조선말 큰사전』 편찬 사업. 한글날의 전신인 '가갸날' 제정 1926년.
  • 조선어학회 사건(1942): 함흥 여학생의 일기장에서 시작된 검거 — 33인 체포, 이윤재·한징 두 분 옥중 순국. 재판부가 "어문 운동은 민족 운동의 형태"라고 판결문에 명시 — "일제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는 수업 멘트의 근거입니다.
  • 서울역 창고 원고 발견(1945년 9월): 일제가 증거물로 압수해 재판소로 보내던 원고가 광복 직후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발견된 실화. 이 원고로 『큰사전』(전 6권)이 1957년 완간됩니다.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신채호의 말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출전은 불분명 — 인용하실 때 "~라는 정신"으로 표현하는 것이 안전합니다(이 대본도 그렇게 처리).
  • 윤동주: 1943년 체포,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 — 광복 6개월 전.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광복 후(1948) 출간.
⑤ 세계 한 스푼 · 80분판 56~62분 · 50분판 33~37분

같은 시대, 인도의 간디 — 폭력 없이 싸운 또 하나의 민족

1919년, 두 개의 비폭력

▶ 진행 골격
  • 우리가 3·1운동으로 맨손 만세를 부르던 바로 그 1919년, 영국의 지배를 받던 인도에서도 간디가 비폭력 저항 운동을 이끌기 시작.
  • 같은 문법: 총 대신 맨몸으로, 폭력 대신 의지로 — "때리지 않되, 굴복하지도 않는다."
  • 포인트: 억압받던 민족들이 같은 시대에 같은 방법을 발견했다 — 3·1운동은 세계사의 외딴 사건이 아니라 그 큰 물결의 맨 앞줄.
샘플 대본 펼치기 — 세계 한 스푼 완성본

세계 한 스푼. 우리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던 바로 그 1919년, 지구 저쪽의 인도에서도 놀랍도록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인도는 그때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간디라는 지도자가 아주 독특한 싸움을 시작해요. 무기를 들지 않는 싸움 — 비폭력 저항이에요.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고, 맞아도 되받아치지 않지만, 절대 물러서지도 않는 거예요.

어때요, 어디서 본 문법이죠? 총 대신 태극기를 든 3·1운동과 똑같아요. 신기하지 않아요? 서로 연락한 것도 아닌데, 억압받던 민족들이 같은 시대에 같은 방법을 발견한 거예요. 때리는 힘보다 굴복하지 않는 마음이 더 오래간다는 걸요. 그러니까 우리의 3·1운동은 세계사에서 외딴 사건이 아니라, 20세기에 전 세계 식민지 민족들이 일어나는 거대한 물결의 맨 앞줄에 있었던 거예요. 실제로 3·1운동은 중국의 학생 운동(5·4운동)에도 영향을 줬다고 평가받아요.

📘 강사용 배경지식 — 이 짝짓기의 연대 근거
  • 1919년 간디의 첫 전국 규모 비폭력 저항(로울라트 법 반대 사탸그라하)이 3·1운동과 같은 해 — 원장 시안의 짝(간디)이 연대적으로 정확해 유지했습니다. 간디의 본격적 비협력 운동은 1920~22년.
  • 3·1운동(3월) → 중국 5·4운동(5월) 영향설은 중국 측 당대 지식인들의 언급이 있어 "영향을 줬다고 평가받는다" 수준으로 말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⑥ 문제로 정리 · 80분판 62~77분 · 50분판 37~47분

개념서 빈칸 채우기 — 오늘의 핵심 고정

목표: 합창 → 기록. 오늘은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출생지(임시정부)"가 남는 것이 8차시를 위해 중요하다.

개념서 빈칸

▶ 진행 골격
  • 1번 — 나라를 빼앗겼던 1910~1945년의 시기를? 일제강점기
  • 2번 — 1919년 3월 1일, 태극기를 들고 전국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은? 3·1운동
  • 3번 — 아우내 장터의 만세를 이끈 열여섯 살 학생은? 유관순
  • 4번 —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독립운동가는? 안중근
  • 5번 — 3·1운동 뒤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처음 지은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 6번 — 사전을 만들어 우리말을 지키다 일제에 잡혀간 학자들의 모임은? 조선어학회
  • 7번 — '대한민국'의 '민국'은 무슨 뜻? 백성(국민)이 주인인 나라
50분판은 5문항. 7번은 8차시(정부 수립)와 직결되는 개념이라, 고학년 반은 쓰게 하고 저학년 반도 말로는 꼭 확인하세요.
샘플 대본 펼치기 — 정리 진행 완성본

개념서 갑니다. 오늘은 차분하게. 1번 — 나라를 빼앗겼던 1910년부터 1945년까지를? [일제강점기!] 2번 — 1919년 3월 1일의 만세 운동? [3·1운동!] 3번 — 아우내 장터의 열여섯 살 학생? [유관순!]

4번 —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분? [안중근!] 5번 —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처음 지은 정부? [대한민국 임시정부!]

도전 문제. 6번 — 사전으로 우리말을 지킨 학자들의 모임? [조선어학회!] 7번 — '대한민국'의 '민국'은 무슨 뜻이라고 했죠? [백성이 주인인 나라!] 이 뜻, 다음 시간에 정말 중요해져요.

일곱 번째 도장. 이제 우리 여행에 딱 한 칸이 남았어요.

⑦ 마무리·예고 · 80분판 77~80분 · 50분판 47~50분

다음 시간 예고 — 이 이야기의 결말

오늘은 마음이 무거운 시간이었죠. 하지만 오늘 만난 분들 — 만세를 부른 사람들, 정부를 세운 사람들, 사전을 만든 사람들 — 이분들이 한결같이 믿었던 게 하나 있어요.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 다음 시간이 우리 여행의 마지막이에요.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날의 이야기, 그리고 고조선에서 시작한 8주의 길 전체를 한 장의 지도로 완성하는 날입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
📘 이 차시 전체를 관통하는 한 문장 (수업 전 마음에 담아두실 것)
  • "이 차시의 위험은 '분노 학습'으로 흐르는 것 — 원장 시안의 진행 팁대로 담담하게. 축은 증오가 아니라 '무엇을 지키려 했는가'입니다. 잃은 것의 목록(주권·말·이름)과 지킨 방법의 목록(만세·정부·의거·사전)이 정확히 짝을 이루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 그 대칭이 보이면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답을 찾습니다."

7차시 문제은행 · 30제 (난이도 ★1 기초 ~ ★5 도전) + 예비 30제

용도★1~2 = 수업 중 문답·개념서 확인용(초3~4) · ★3 = 고학년 도전 문제 · ★4~5 = 강사님 준비용(학부모·상위권 아이의 어떤 질문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한 깊이). 수업에서 ★4~5를 직접 낼 필요는 없습니다. 이 차시는 담담하게 — 분노가 아니라 "무엇을 지키려 했는가"를 찾는 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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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빼기 — 겹치거나 불필요한 문제 표시 (기록됨)
  • ➕ 더 — 같은 난이도(★)의 예비 문제가 그 문제 바로 아래에 즉시 공개 (미리 만들어 둔 것이라 비용 0)
  • 예비 소진 시 — "더 원함"으로 기록 → 📋 표시 결과 복사 → Claude(페이블)에게 붙여넣으면 새로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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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초 — 초등 3~4학년 (수업 직후 전원 정답 목표)
1.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1910~1945년의 시기를 무엇이라 하나요?단답
정답·해설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이 강제로 점령한 시기'라는 뜻 — 35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2.1919년 3월 1일, 태극기를 들고 전국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은?단답
정답·해설
3·1운동. 손에 든 것은 총이 아니라 태극기 — 맨손의 만세였습니다.
3.고향 천안 아우내 장터의 만세운동을 이끈 열여섯 살 학생은?단답
정답·해설
유관순. 감옥 안에서도 만세를 멈추지 않다가 열여덟 살에 순국했습니다.
4.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독립운동가는?단답
정답·해설
안중근. 나라가 완전히 넘어가기 직전인 1909년의 일입니다.
5.3·1운동 뒤 중국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처음 지은 정부는?단답
정답·해설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금 우리나라 이름 '대한민국'이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6.(O/X) 3·1운동 때 사람들은 총이 아니라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OX
정답·해설
O. "싸움에는 총으로 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 맨손의 만세도 싸움이었습니다.
7.사전을 만들어 우리말을 지키다 일제에 잡혀간 학자들의 모임은?단답
정답·해설
조선어학회. 총 대신 '사전'을 든 사람들 — 말을 지키는 것도 독립운동이었습니다.
8.(O/X)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 동안이었다.OX
정답·해설
O. 1945년에 나라를 되찾습니다(다음 8차시).
예비예1.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처단한, 우리나라를 빼앗는 데 앞장선 일본 최고 실력자는?단답
정답·해설
이토 히로부미. 을사늑약을 주도하고 대한제국 통치를 총지휘한 인물입니다.
예비예2.(O/X) 지금 우리나라 이름 '대한민국'은 임시정부 때(1919) 처음 지어졌다.OX
정답·해설
O. "지금 우리나라 이름이 왜 대한민국인지 — 그 답이 1919년 상하이에 있다".
예비예3.우리가 3·1운동을 하던 1919년, 인도에서 영국에 맞서 비폭력 저항을 이끈 지도자는?단답
정답·해설
간디. 총 대신 맨몸으로 싸운 3·1운동과 같은 문법 — 억압받던 민족들이 같은 시대에 같은 방법을 발견한 것.
예비예4.3·1운동 때 사람들이 손에 든 것은 무엇이었나요?단답
정답·해설
태극기. 총도 칼도 아닌 태극기 —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예비예5.(O/X) 유관순은 감옥 안에서도 만세를 부르다 순국했다.OX
정답·해설
O. 감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감옥 안에서 더 심한 벌을 받을 걸 알면서도 만세를 불렀습니다.
예비예6.조선어학회가 우리말 낱말을 모아 만들려 한 사전의 이름은?단답
정답·해설
『조선말 큰사전』. 사전은 우리말을 통째로 담아 두는 '금고' — 되찾는 날 아이들에게 돌려줄 말을 채워 둔 것.
★2 기본 — 초등 4~5학년 (개념서를 제대로 채웠다면 풀 수 있는 수준)
9.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앗은 조약의 이름은?단답
정답·해설
을사늑약. 외교권은 '나라의 입' — 이제 세계에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 것. '늑'은 '억지로'라는 뜻입니다.
10.1910년, 나라를 다스릴 권리(주권)를 통째로 빼앗겨 대한제국이 지도에서 사라진 일을 무엇이라 하나요?단답
정답·해설
국권 피탈. 1905년(외교권) → 1910년(주권 전부)로 '단계적으로' 빼앗겼습니다.
11.'대한민국'의 '민국(民國)'은 어떤 뜻인가요?객관식
  • ①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
  • ② 백성(국민)이 주인인 나라
  • ③ 아주 큰 나라
  • ④ 군인이 다스리는 나라
정답·해설
② 백성(국민)이 주인인 나라. '대한'은 대한제국에서 잇되, '제국'이 아닌 '민국' — 1919년에 벌써 국민의 나라를 선언한 것. ① 황제의 나라는 '제국'(대한제국). 임시정부는 일부러 이를 바꿨습니다. ③④ 크기·군인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12.3·1운동 때 "조선이 독립된 나라이며 조선 사람이 그 주인"임을 밝힌 글은?단답
정답·해설
독립선언서. 빼앗겼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온 민족의 공식 선언이었습니다.
13.(O/X) 안중근 의거는 나라가 완전히 넘어간(1910) 뒤에 일어났다.OX
정답·해설
X. 안중근 의거는 1909년 — 병합(1910) 직전, "나라가 완전히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던" 일이었습니다.
14.1942년, 일제가 "사전을 만드는 것은 독립운동"이라며 우리말 학자들을 잡아 가둔 사건은?단답
정답·해설
조선어학회 사건. 역설적으로, 일제 스스로 "말을 지키는 것이 독립운동"임을 인정한 셈입니다.
15.일본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지우려고 특히 빼앗으려 한 세 가지는?객관식
  • ① 땅·돈·군대
  • ② 말·역사·이름
  • ③ 음식·옷·집
  • ④ 노래·춤·그림
정답·해설
② 말·역사·이름. 학교에서 일본어가 '국어'가 되고, 역사를 못 배우게 하고,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꾸게 했습니다. ① 땅·돈·군대도 빼앗았지만,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루는 핵심은 말·역사·이름입니다. ③④ 이 차시의 '잃은 것의 목록'과는 초점이 다릅니다.
예비예1.안중근은 법정에서 자신을 '살인자'가 아니라 무엇이라고 밝혔나요?단답
정답·해설
대한의군 참모중장. "이것은 개인의 살인이 아니라, 나라를 침략한 적장을 향한 전쟁 중의 작전"이라 주장했습니다.
예비예2.(O/X) '을사늑약'의 '늑'은 '억지로(강제로)'라는 뜻이다.OX
정답·해설
O. 궁궐을 군대로 둘러싸고 강제로 맺게 한 조약이라, 정상적인 '조약'이 아니라 '늑약(강제로 맺은 조약)'이라 부릅니다.
예비예3.'대한민국'의 '대한'은 어느 나라 이름에서 가져온 것인가요?객관식
  • ① 고구려
  • ② 대한제국
  • ③ 고려
  • ④ 조선어학회
정답·해설
② 대한제국. 1897년 조선이 이름을 바꾼 '대한제국'을 잇는다는 뜻 — 다만 '제국'을 '민국'으로 바꿨습니다. ①③ 고구려·고려와는 직접 연결되지 않습니다. ④ 조선어학회는 말을 지킨 학자들의 모임입니다.
예비예4.유관순이 감옥에서 순국했을 때의 나이는 몇 살이었나요?단답
정답·해설
열여덟(18) 살. 열여섯에 만세운동을 이끌고, 감옥에서도 만세를 부르다 열여덟에 순국했습니다.
예비예5.(O/X) 3·1운동은 서울에서만 잠깐 일어난 운동이었다.OX
정답·해설
X. 서울에서 시작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남녀노소가 함께 두 달 넘게 들불처럼 번진 운동이었습니다.
예비예6.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40년에 만든 정식 군대의 이름은?단답
정답·해설
광복군. 빼앗긴 나라가 정부(1919)에 이어 군대(1940)까지 갖춘 것입니다.
예비예7.안중근처럼 무력 의거로 순국한 분을 부르는 호칭은?객관식
  • ① 열사
  • ② 의사
  • ③ 박사
  • ④ 선사
정답·해설
② 의사(義士). 안중근·윤봉길처럼 무력 의거로 순국한 분을 '의사'라 부릅니다. ① 열사(烈士) — 유관순·이준처럼 맨몸의 항거로 순국한 분을 부르는 호칭. ③④ 박사·선사는 이 맥락의 호칭이 아닙니다.
★3 응용 — 초등 고학년~중학생 ("왜?"를 묻는 문제들. 수업의 사고 확장용)
16.나라를 '한 번에'가 아니라 '단계적으로' 빼앗겼음을, 1905년과 1910년을 들어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먼저 외교권('나라의 입')을 빼앗고, 1910년에 나라를 다스릴 권리(주권) 전부를 빼앗아 대한제국을 지도에서 지웠다. "방 한 칸씩 차지하듯" 단계적으로 진행된 것.
17.일본이 하필 '말·역사·이름'을 빼앗으려 한 까닭은 무엇일까요?서술
정답·해설
말·역사·이름은 모두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루는 것이라, 이를 지우면 한 세대 뒤엔 빼앗긴 줄도 모르게 '우리'라는 감각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 일본이 노린 건 땅이 아니라 그 '우리'였습니다.
18.3·1운동이 '실패'가 아니라고 하는 근거를 두 가지 들어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① 온 세계의 신문에 실려 "한국인은 독립을 원한다"를 세계가 알게 됨 ② 그 열매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짐. 그리고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를 스스로 확인한 것도 큰 성과.
19.임시정부가 국호에 '제국'이 아니라 '민국'을 넣은 것에는 어떤 뜻이 담겼나요?서술
정답·해설
나라를 되찾으면 임금(황제)의 나라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주인인 나라로 만들겠다는 뜻. 1919년에 벌써 '국민 주권'을 선언한 것 — 8차시(정부 수립)로 이어집니다.
20.'사전을 만드는 것'이 어떻게 독립운동이 될 수 있었는지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일본이 빼앗으려 한 것이 우리말이었으므로, 사라져 가는 말을 사전이라는 '금고'에 담아 지키는 것 자체가 곧 저항(독립운동)이 되었기 때문. 되찾는 날 아이들에게 돌려줄 말을 지켜 둔 것.
21.안중근이 미워한 것은 '일본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었는지, 『동양평화론』과 연결해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안중근이 맞선 것은 일본 '사람'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이었다. 그는 옥중에서 한국·중국·일본이 서로 침략하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방법을 담은 『동양평화론』을 쓰다(끝내 완성 못 함) 순국했다. 증오가 아니라 평화를 향한 사람이었던 것.
22.독립운동이 '한 가지 모양'이 아니었음을, 여러 예를 들어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만세를 부른 사람(3·1운동), 정부를 세운 사람(임시정부), 총을 든 사람(독립군), 사전을 만든 사람(조선어학회), 시를 쓴 사람(윤동주) —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 무기로' 싸웠고, 그 총합이 독립운동이다. 빼앗긴 것이 여럿이라 지키는 방법도 여럿이었던 것.
예비예1.고종이 헤이그에 특사를 보낸 일(1907)이 그 시대 국제사회의 어떤 면을 보여주나요?서술
정답·해설
고종이 "을사늑약은 강제라 무효"라고 세계에 호소했지만 열강들이 회의장 문조차 열어주지 않은 데서, 힘없는 나라의 편을 들어주는 나라는 없다는 냉정한 현실이 드러난다. 3차시 "세상에 공짜 편은 없다"의 회수.
예비예2.안중근은 '의사', 유관순은 '열사'라고 구분해 부르는 관례를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안중근·윤봉길처럼 무력 의거로 순국한 분은 '의사(義士)', 유관순·이준처럼 맨몸의 항거로 순국한 분은 '열사(烈士)'로 부르는 것이 관례다. 어떻게 저항했느냐에 따른 호칭 구분입니다.
예비예3.조선어학회 사건(1942)이 '역설적으로' 무엇을 인정한 셈인지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일제가 학자들을 잡아가며 "사전 만들기 = 독립운동"이라고 규정한 것은, 곧 '말을 지키는 것이 총을 드는 것만큼 무서운 독립운동'임을 일제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탄압이 오히려 그 힘을 증명한 아이러니.
예비예4.5차시의 세종(한글)과 7차시의 조선어학회는 어떻게 이어지나요?서술
정답·해설
세종이 백성을 위해 만든 한글을, 거의 500년 뒤의 후손들(조선어학회)이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목숨 걸고 지켜냈다. 만든 것과 지킨 것이 하나의 실로 이어지는 지점 — 한글날도 이때 만들어진 기념일입니다.
예비예5.3·1운동과 간디의 비폭력 저항이 '같은 문법'이라 하는 까닭을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둘 다 총 대신 맨몸으로, 부당함에 따르지 않되 맞아도 되받아치지 않으면서 절대 굴복하지도 않는 방식이었다. 서로 연락하지 않았는데도 억압받던 민족들이 같은 시대에 같은 방법을 발견한 것.
예비예6."유관순이 감옥에서 나온 뒤 또 만세를 불렀다"는 말은 왜 사실과 다른가요?서술
정답·해설
감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감옥 안에서 3·1운동 1주년에 다시 만세를 불렀기 때문. 더 심한 벌을 받을 걸 알면서도 부른 것 — 그 마음이 벌보다 컸던 것.
예비예7."만세만 불러서 뭐가 달라지나"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서술
정답·해설
그날 당장 나라가 돌아오진 않았지만, 세계가 우리의 독립 의지를 알게 됐고, 임시정부가 태어났으며, 무엇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했다. 싸움에는 총으로 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4 심화 — 중학~고1 수준 (강사 준비용. 상위권 아이·학부모 질문 방어선)
23.안중근 의거를 "쏜 총알이 세 발 모두 이토에게 명중했다"고 하면 왜 부정확한지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안중근이 쏜 여러 발의 총알 가운데 세 발이 이토에게 명중한 것이지, 쏜 총알 전부가 명중한 것은 아니기 때문. "쏜 총알 가운데 세 발이 명중"이라고 해야 정확합니다.
24.안중근의 '단지동맹'은 몇 명이 어떤 결의를 한 것인가요?서술
정답·해설
안중근을 포함한 열두 명이 왼손 넷째 손가락 한 마디를 끊어, 그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 네 글자를 쓴 결의다. ('동지 열한 명과'가 아니라 '안중근 포함 12명'이 정확한 인원.)
25.을사늑약(1905) 직후인 1906년, 일본이 대한제국 통치를 위해 세운 기구는? (초대 우두머리가 이토 히로부미)단답
정답·해설
통감부. 초대 통감이 이토 히로부미 — 그가 안중근 의거의 표적이 된 배경입니다.
26.안중근이 옥중에서 쓴 책의 이름과, 그 책의 특별한(안타까운) 점을 말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동양평화론』 — 한국·중국·일본이 서로 침략하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방법을 담은 책인데, 사형 집행으로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순국했다. 미완이라는 점까지 정확히 전하는 것이 좋습니다.
27.수업에서 쓰는 독립선언서 인용문("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된 나라이며…")을 '원문 그대로'라고 하면 안 되는 까닭은?서술
정답·해설
실제 원문은 한문 투("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인데, 수업 인용문은 이를 초등 눈높이의 현대어로 풀어 쓴 것이기 때문. 뜻은 같지만 원문 그대로는 아니라는 점을 구분해야 합니다.
예비예1.고종이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려 특사를 보낸 1907년의 국제 회의는 어디서 열렸나요?단답
정답·해설
헤이그(네덜란드)의 만국평화회의. 그러나 열강이 외면했고, 일본은 이를 구실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습니다.
예비예2.1910년에 실제로 빼앗긴 나라의 정식 이름은 '조선'이 아니라 무엇이었나요?단답
정답·해설
대한제국. 1897년 조선이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의 나라를 선포했던 것 — '대한'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와, 훗날 '대한민국'으로 이어집니다.
예비예3.1920년 봉오동·청산리에서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독립군 지도자를 두 명 드세요.단답
정답·해설
홍범도·김좌진. 빼앗긴 나라의 군대가 나라 밖(만주)에서 정규 일본군을 이긴 사례입니다(80분판 심화).
예비예4.'우리말로 시를 쓰는 것조차 죄가 되던 시대'를 보여주는, 광복 반년 전 옥중에서 순국한 시인은?단답
정답·해설
윤동주.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1945년 2월(광복 6개월 전) 옥사했습니다 — '우리말로 시를 쓰는 것조차 마음 편치 않던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체포 죄목 자체는 '시 창작'이 아니라 독립운동 관련이라는 점만 정확히).
예비예5.조선어학회가 빼앗긴 사전 원고가 기적처럼 다시 발견된 곳과 그 결과를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일제가 증거물로 압수했던 2만 6천여 장의 원고가 광복 직후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되었고, 그 원고로 광복 후 『큰사전』이 완성되었다. "말의 금고가 끝내 살아남은" 실화입니다.
예비예6.지금의 한글날의 전신으로, 우리말 학자들이 1926년에 만든 기념일의 이름은?단답
정답·해설
가갸날.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한글을 기념하는 날을 만든 것 자체가, 말과 글을 지키려는 저항이었습니다.
★5 도전 — 고교·수능 한국사 수준 (여기까지 알고 계시면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28.이 차시의 '잃은 것의 목록'과 '지킨 방법의 목록'이 정확히 짝을 이룬다는 것을, 예를 들어 논증하세요.서술
정답·해설
주권을 잃자 임시정부를 세우고 의거로 맞섰고(주권↔정부·의거), 말을 빼앗기려 하자 사전을 만들어 지켰으며(말↔조선어학회), 역사·이름을 지우려 하자 역사를 기록하고 한글날을 만들어 저항했다(역사·이름↔역사서술·한글날). 잃은 것과 지킨 것이 하나하나 대응한다는 점이 이 차시의 설계입니다.
29.3·1운동이 '세계사의 외딴 사건이 아니다'라는 것을, 같은 시대의 다른 움직임을 근거로 논증하세요.서술
정답·해설
같은 1919년 인도에서 간디가 비폭력 저항을 이끌었고, 3·1운동은 두 달 뒤 중국의 5·4운동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즉 3·1운동은 20세기에 전 세계 식민지 민족들이 일어난 거대한 물결의 '맨 앞줄'에 있었다. 세계사적 흐름 속의 사건으로 보는 관점.
30.안중근이 "나는 살인자가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한 주장의 논리와 그 의미를 설명하세요.서술
정답·해설
자신의 행위를 개인의 살인이 아니라 '나라를 침략한 적장을 향한, 전쟁 중의 군사 작전'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는 이토의 죄 열다섯 가지를 조목조목 들어, 자기 행위가 침략에 맞선 정당한 저항임을 논증했다. 개인적 복수가 아니라 국가 간 전쟁의 틀로 자신을 자리매김한 것.
예비예1.'되찾는 싸움도 총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라는 명제를, 조선어학회·윤동주·임시정부를 근거로 논증하세요.서술
정답·해설
조선어학회는 사전(말)으로, 윤동주는 우리말 시(정신·문화)로, 임시정부는 정부·외교(주권)로 싸웠다. 빼앗긴 것이 총칼만이 아니라 말·정신·주권이었으므로, 그것을 지키는 여러 방식이 모두 독립운동이 된 것.
예비예2.1919년 임시정부의 '민국'이라는 국호 선택이 광복 이후(8차시)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서술하세요.서술
정답·해설
1919년에 이미 '국민이 주인인 나라(민국)'를 선언했기에, 광복 후 세워진 나라도 임금의 나라가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민주 국가 '대한민국'으로 이어졌다. 나라 이름과 그 정신이 한 줄로 연결된다는 것 — 8차시의 핵심 복선.
예비예3.조선어학회 사건 재판에서 "어문 운동은 민족 운동"이라 판결한 것이 갖는 아이러니를 논증하세요.서술
정답·해설
일제는 학자들을 처벌하려고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이 곧 민족 운동(독립운동)"이라 규정했는데, 이는 억누르려는 쪽이 오히려 '말을 지키는 일의 힘'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준 셈이다. 탄압이 그 대상의 가치를 증명하는 역설.
예비예4.이 시대를 '분노'가 아니라 '무엇을 지키려 했는가'의 관점으로 배우는 것이 왜 더 나은지 서술하세요.서술
정답·해설
분노(증오)는 대상을 향하지만, '무엇을 지키려 했는가'는 우리의 정체성(말·역사·이름)을 향한다. 잃은 것과 지킨 것의 대칭을 스스로 발견하게 하면, 미움을 배우는 대신 '지킬 가치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안중근이 미워한 것도 일본 사람이 아니라 '침략'이었다는 점과 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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