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배우는 우리 역사 · 강사용 마스터 대본 · 📚 목차

3차시 · 하나가 된 나라 — 통일신라와 발해

지금은 80분 전체판 — 알아두실 내용까지 전부 담은 준비용 마스터입니다.
이 문서 읽는 법

차시 개요

학습 목표① 통일이 두 단계(나당연합 → 나당전쟁)로 이루어졌음을 안다 ② 통일의 빛과 그늘을 균형 있게 평가해 본다 ③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으며, 이 시대를 남북국이라 부르는 이유를 안다
핵심 키워드나당연합 · 김유신 · 문무왕 · 삼국통일 · 발해 · 대조영 · 남북국 · 김춘추 · 매소성·기벌포
이 차시의 뼈대"통일은 두 번의 선택이었다 — 남의 손을 빌린 선택, 그리고 그 손을 뿌리친 선택. 역사는 빛과 그늘을 함께 본다."
준비물7세기 정세 지도(신라·당 화살표), 고구려 최대 영토 vs 통일신라 비교 지도, 사진(대왕암·발해 유적), 개념서
시간 설계80분판 도입6 → 위기와 연합18 → 배신과 완성14 → 빛과 그늘12 → 발해12 → 세계5 → 정리11 → 마무리2
50분판 도입4 → 위기와 연합10 → 배신과 완성9 → 빛과 그늘8 → 발해9 → 세계4 → 정리4 → 마무리2
① 도입 · 80분판 0~6분 · 50분판 0~4분

지난 시간의 질문 회수 — "신라 혼자 힘이었을까?"

목표: 한강 공식 복습 → 2차시 마지막에 던져 둔 질문("혼자 힘으로?")을 회수하며 오늘의 긴장을 세운다.

도입 진행

▶ 진행 골격
  • 복습 문답: "한강을 가진 나라는 곧 뭐의 증거?" → 전성기! "마지막 주인은?" → 신라!
  • 질문 회수: "그럼 구석의 신라가 저 큰 고구려를 혼자 힘으로 이겼을까요?" — 지난주 숙제였던 질문.
  • 오늘의 예고: "신라는 아주 위험한 선택을 합니다 — 힘센 남의 손을 빌리는 것.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가 오늘 이야기."
  • [판서: 통일신라 · 발해]
샘플 대본 펼치기 — 도입 완성본

자, 지난 시간 마지막 공식 기억나요? 한강을 가진 나라는 곧 — [아이들: 전성기!] 챔피언 벨트라고 했죠. 그 벨트의 마지막 주인이 누구였죠? [신라!] 맞아요.

그리고 선생님이 질문 하나를 숙제처럼 남겼어요. 구석에서 제일 늦게 큰 신라가, 만주 벌판의 저 거대한 고구려를 과연 혼자 힘으로 이길 수 있었을까? [답 받기 — "아니요"가 나오게 유도]

그렇죠, 어려웠겠죠. 그래서 신라는 아주 위험한 선택을 해요. "내 힘만으론 부족하다. 그렇다면 — 힘센 남의 손을 빌리자." 남의 손을 빌리면 일은 쉬워져요. 그런데 세상에 공짜가 있을까요? [뜸들이기] 오늘은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그리고 그 끝에서 우리 역사에 어떤 나라들이 남았는지를 봅니다. [판서: 통일신라 · 발해]

📘 강사용 배경지식 — 7세기 국제전이라는 큰 그림
  • 삼국통일 전쟁은 한반도 안 싸움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전입니다: 고구려는 이미 수나라(살수대첩 612, 을지문덕)·당나라(안시성 645)의 대군을 연달아 물리친 상태였고, 당은 "고구려를 직접 못 꺾으니 신라와 손잡고 남북에서 협공"이라는 계산으로 동맹에 응했습니다.
  • 당이 신라를 도운 것은 호의가 아니라 자기 이익 — 이 사실이 뒤의 '배신'을 자연스럽게 설명합니다. 아이가 "당나라는 왜 도와줬어요?" 물으면 이걸로 답하시면 됩니다.
  • 살수대첩·안시성은 이 차시에서 본문으로 다루지 않지만(시간상), "고구려는 중국의 침입을 몇 번이나 막아낸 방패였다" 한 마디는 빛과 그늘 파트에서 고구려 멸망의 무게를 전할 때 유용합니다.
② 강의 1 · 80분판 6~24분 · 50분판 4~14분

벼랑 끝의 신라, 당의 손을 잡다 — 그리고 두 나라가 사라지다

목표: 나당연합의 배경(신라의 절박함)과 백제·고구려 멸망의 흐름을 이야기로 잡는다. 연도 암기보다 "660 백제 → 668 고구려" 순서 감각.

㉮ 벼랑 끝의 신라와 김춘추의 외교

▶ 진행 골격
  • 배경: 한강을 빼앗긴 백제가 복수전을 시작 — 신라의 성 40여 개가 순식간에 함락(대야성). 신라는 벼랑 끝.
  • 구원 투수 김춘추(훗날 태종 무열왕): 나라를 구하러 직접 외국으로 떠나는 외교의 달인.
  • 반전 에피소드: 김춘추가 맨 처음 도움을 청하러 간 곳은 당이 아니라 고구려! 그러나 협상 결렬로 갇힘 — 고구려 신하(선도해)가 귀띔해 준 "토끼의 간" 이야기에서 꾀를 얻어 탈출(별주부전과 이어지는 이야기).
  • 결국 바다 건너 당 태종과 담판 → 나당연합 성립. [판서: 신라 + 당 = 나당연합]
  • 발문: "당나라는 왜 신라를 도와줬을까? 공짜였을까?" → 당도 고구려를 치고 싶었다(자기 이익).
"당나라도 고구려랑 싸우고 싶어서요!" — 정확. "세상에 공짜 동맹은 없다"를 이 시점에 심어두면 뒤의 배신이 자연스럽게 이해됨.
김춘추의 고구려행 실패담(토끼의 간)은 아이들이 사랑하는 에피소드지만 흐름상 곁가지입니다. 50분에서는 "여러 나라에 도움을 청하다 마지막에 당과 손잡았다" 한 문장으로 압축하세요. 별주부전과 연결되는 이야기라 시간이 남으면 최고의 보너스 카드입니다.
샘플 대본 펼치기 — 위기와 연합 완성본

먼저 신라가 얼마나 급했는지부터 볼게요. 지난 시간에 신라가 한강을 차지했다고 했죠? 그런데 그 한강, 원래 누구랑 같이 되찾은 거였죠? 백제랑요. 같이 찾아놓고 신라가 독차지했으니, 백제가 얼마나 이를 갈았겠어요. 백제의 의자왕이 복수전을 시작하는데, 신라의 성을 순식간에 사십 개 넘게 빼앗아요. 신라는 정말 나라가 망하기 직전, 벼랑 끝까지 몰려요.

이 벼랑 끝에서 등장하는 사람이 김춘추예요. 이 분은 칼이 아니라 로 싸우는 사람, 외교의 달인이었어요. 나라를 구하려고 직접 외국으로 떠나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맨 처음 찾아간 곳이 어디였냐면 — 당나라가 아니라 고구려였어요! "우리 백제 좀 같이 막아주세요" 하러 간 거죠. 그런데 고구려가 "그럼 예전에 가져간 땅부터 내놔" 하면서 김춘추를 가둬버려요. 김춘추가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알아요? 고구려의 한 신하가 김춘추에게 슬쩍 옛날이야기를 들려줘요 — 토끼가 용궁에 끌려갔다가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꾀를 내서 살아 나온 이야기. 힌트를 알아챈 김춘추는 "돌아가면 그 땅을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약속하는 척해서 풀려나요. 토끼처럼 빠져나온 거죠. 여러분이 아는 별주부전이 바로 이 이야기와 이어져 있어요.

결국 김춘추는 바다 건너 당나라로 가서 황제와 마주 앉아요. 그리고 약속을 받아내요.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립시다." 이게 나당연합이에요. [판서: 신라 + 당 = 나당연합]

자, 여기서 탐정 질문. 당나라는 왜 도와줬을까요? 신라가 불쌍해서? [답 받기] 아니죠. 당나라도 고구려를 치고 싶었던 거예요. 몇 번을 쳐들어갔다가 번번이 막혔거든요. 그러니까 이 동맹은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거래였어요. 이 말 기억해 두세요 — 세상에 공짜 동맹은 없다. 이따가 이 말이 다시 나옵니다.

㉯ 두 나라가 사라지다 — 660 백제, 668 고구려

▶ 진행 골격
  •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 — 신라 쪽 총사령관이 김유신. [판서: 660 백제 멸망 — 김유신]
  • 황산벌의 마지막 저항: 백제 계백의 5천 결사대가 김유신의 5만 군과 맞서 네 번을 이김 — 그러나 다섯 번째에 무너짐. "지는 걸 알면서도 나라를 위해 싸운 장수"로 백제의 마지막을 품위 있게 전달.
  • 8년 뒤 668년, 이번엔 고구려 — 잇단 전쟁으로 지치고 지도층이 분열된 상태에서 남북 협공을 받고 멸망. [판서: 668 고구려 멸망]
  • 정리: "자, 이제 세 나라가 하나가 됐을까요?" → 아직 아니다 — 문제는 지금부터.
계백과 황산벌은 "패자의 품격"을 가르칠 수 있는 드문 대목이라 80분판에 넣었습니다. 50분에서는 "백제가 끝까지 저항했지만 660년에 무너졌다"로 압축하세요. 단, 계백 이야기를 하실 거면 가족 이야기(처자식) 부분은 초등 정서에 무거우니 빼고 '네 번 이긴 결사대'까지만 권합니다.
샘플 대본 펼치기 — 두 나라의 멸망 완성본

동맹을 맺은 나당연합군이 먼저 백제로 쳐들어가요. 신라 쪽 총사령관이 그 유명한 김유신 장군이에요. 백제도 그냥 무너지지 않았어요. 황산벌이라는 들판에서 백제의 계백 장군이 겨우 5천 명의 결사대로 김유신의 5만 대군을 막아섰어요. 5천 대 5만 — 열 배예요. 그런데 이 결사대가 네 번 싸워서 네 번을 다 이겨요. 질 걸 알면서도 나라를 위해 물러서지 않은 거예요. 하지만 다섯 번째 싸움에서 결국 무너집니다. 그렇게 660년, 백제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요. [판서: 660 백제]

다음 차례는 고구려예요. 고구려는 원래 중국의 대군도 몇 번이나 막아낸 강한 나라였는데, 오랜 전쟁에 지쳐 있었고 결정적으로 지도자들이 자기들끼리 편을 갈라 싸우고 있었어요. 밖에서 두들기는 것보다 안에서 갈라지는 게 더 무서운 법이거든요. 결국 남쪽에서 신라가, 북쪽에서 당나라가 동시에 밀고 들어가서, 668년 고구려도 무너집니다. [판서: 668 고구려]

자, 그럼 이제 세 나라가 하나가 된 걸까요? 통일 완성? [뜸들이기] 아니에요.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에요.

🌱 돌발질문 대비

"김유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 "신라 장군인데, 사실 핏줄은 지난 시간에 배운 가야 왕족의 후손이에요. 가야가 신라에 합쳐진 뒤 그 후손이 신라 최고의 장군이 된 거죠." (2차시 가야와 연결되는 좋은 회수 포인트)

"의자왕은 나쁜 왕이에요? 삼천궁녀는요?" → "젊을 때는 신라를 벼랑까지 몬 유능한 왕이었어요. '삼천궁녀'는 훨씬 뒷시대에 지어져 부풀려진 이야기라서, 역사 기록으로는 근거가 없어요." (낙화암 전설과 사실 구분 — 좋은 사료 비판 소재)

"고구려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됐어요?" → "흩어졌지만 사라지지 않았어요. 오늘 수업 끝부분에 그 후손들이 세운 나라가 나옵니다." (발해 떡밥)

③ 강의 2 · 80분판 24~38분 · 50분판 14~23분

동맹의 배신, 그리고 진짜 통일 — 나당전쟁

목표: "공짜 동맹은 없다"의 회수. 당의 야욕 → 나당전쟁 → 676년 완성을 통해 통일의 '자주성' 부분을 세운다. 이 차시에서 제일 통쾌한 대목.

㉮ 당의 본색 — "이 땅, 내가 다 가지면 안 되나?"

▶ 진행 골격
  • 당이 백제·고구려의 옛 땅에 자기네 관청을 설치하고 눌러앉음 — 심지어 신라 땅까지 자기 관할이라 주장.
  • 비유: "친구랑 같이 도둑을 잡았는데, 친구가 우리 집까지 자기 집이라고 우기는 상황."
  • 발문: "여러분이 신라라면 어떻게 할래요? 참을래요, 싸울래요?" — 상대는 세계 최강 당.
  • 신라의 결단: 어제의 동맹에게 칼을 겨눔 → 나당전쟁.
"싸워요!" — "상대가 세계 최강인데도?"라고 한 번 눌러주면 결단의 무게가 산다. "그래도 우리 땅이니까요"류의 답을 크게 칭찬.
샘플 대본 펼치기 — 당의 배신 완성본

두 나라를 무너뜨리고 나니, 당나라가 슬슬 본색을 드러내요. 백제 옛 땅에 당나라 관청을 세워요. 고구려 옛 땅에도 당나라 관청을 세워요. 어라? 그 땅들을 신라에 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꿀꺽하려는 거예요. 심지어 한술 더 떠서 신라 땅까지 "여기도 이제 당나라 관할"이라고 해버려요.

비유하자면 이런 거예요. 우리 집에 도둑이 들어서 힘센 친구를 불러 같이 잡았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고마워할 것 없어. 대신 이제 이 집 내 거야" 하는 거예요. 어때요? [아이들 반응] 기가 막히죠. 아까 선생님이 뭐라고 했죠? 세상에 공짜 동맹은 — [없다!] 바로 이거였어요.

자, 여러분이 신라라면 어떻게 할래요? 참아요, 싸워요? [싸워요!] 그런데 잠깐 — 상대는 그 고구려를 무너뜨린 세계 최강 당나라예요. 잘못 덤비면 신라까지 사라질 수 있어요. 그래도 싸울래요? [답 받기] 신라의 선택은 — 싸운다, 였어요. 어제의 동맹에게 칼을 겨눈 거예요. 이걸 나당전쟁이라고 해요.

㉯ 676년, 진짜 통일 — 그리고 문무왕

▶ 진행 골격
  • 7년의 전쟁 — 육지의 큰 승리와 바다의 큰 승리(매소성 대첩 675 · 기벌포 해전 676)로 당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냄.
  • 676년 통일 완성. 완성한 왕 = 문무왕(김춘추의 아들). [판서: 676 통일 완성 — 문무왕]
  • 정리 공식: 통일 = 1단계(당과 손잡고 백제·고구려를 무너뜨림) + 2단계(그 당을 몰아내고 완성). "2단계가 있어서 '우리 통일'이 된 것."
  • 대왕암 이야기: 문무왕은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바다에 묻어 달라 유언 — 경주 앞바다의 수중릉(대왕암)으로 전해짐.
매소성·기벌포 지명 암기는 초등 범위 밖이라 컷(중학교에서 만납니다). 대왕암은 아이들 마음에 오래 남는 이야기지만 곁가지라 80분판 전용 — 50분에서는 "문무왕이 완성했다"까지만. 경주 수학여행 다녀온 아이가 있으면 살리기 좋습니다.
샘플 대본 펼치기 — 나당전쟁과 완성 완성본

나당전쟁은 무려 7년을 끌어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았지만, 신라에는 절박함이 있었어요. 당나라 군대에게 이 전쟁은 '멀리 남의 땅에서 하는 전쟁'이었지만 신라에게는 '지면 끝나는 전쟁'이었으니까요. 육지에서는 매소성이라는 곳에서 당의 대군을 크게 무찌르고, 바다에서는 기벌포에서 당의 수군을 꺾어요. 결국 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냅니다.

그래서 676년 — 이 해에 진짜 통일이 완성돼요. 이걸 끝까지 해낸 왕이 문무왕이에요. 아까 외교로 동맹을 만든 김춘추 기억나죠? 문무왕이 바로 그 김춘추의 아들이에요. 아버지는 동맹으로 문을 열고, 아들은 전쟁으로 마무리를 지은 거죠. [판서: 676 통일 완성 — 문무왕]

정리할게요. 통일은 두 단계였어요. 1단계 — 당과 손잡고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린다. 2단계 — 욕심내는 당을 몰아내고 완성한다. 만약 2단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답 받기] 그래요, 한반도 전체가 당나라 땅이 됐을 수도 있어요. 2단계가 있었기 때문에 이게 '우리의 통일'이 된 거예요.

문무왕 이야기 하나만 더. 이 왕은 죽으면서 이런 유언을 남겨요. "나를 바다에 묻어라. 죽어서 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 그래서 경주 앞바다의 바위섬에 왕의 유해를 모셨다고 전해져요. 지금도 있어요 — 대왕암이라고 해요. 죽어서까지 나라 걱정을 한 왕의 마음이 바위로 남아 있는 거예요.

📘 강사용 배경지식 — 연표와 정확성 노트
  • 핵심 연표: 642 대야성 함락(위기) → 648 나당동맹(김춘추-당 태종) → 660 백제 멸망 → 663 백강 전투(백제 부흥군+왜 연합군 패배 — 일본까지 낀 국제전이었다는 증거) → 668 고구려 멸망 → 675 매소성 → 676 기벌포·당군 축출 = 통일 완성.
  • 당이 세운 통치 기구의 정식 명칭: 웅진도독부(백제 땅)·안동도호부(고구려 땅)·계림도독부(신라까지!). 수업에서는 "당나라 관청"으로 충분하고, 계림도독부(신라를 아예 당의 한 지방 취급)가 신라의 결단을 설명하는 결정타입니다.
  • 대왕암(경주 문무대왕릉): 수중릉인지 유골을 뿌린 산골처인지는 학계 논쟁이 있어 "모셨다고 전해져요"라는 표현을 유지하세요.
  • 김유신은 660년 당시 66세의 노장이었고, 나당전쟁 중(673) 세상을 떠나 통일 완성(676)은 보지 못했습니다 — "평생을 바쳤지만 마지막 장면은 못 본 장군"이라는 한 마디가 여운을 남깁니다.
④ 강의 3 · 80분판 38~50분 · 50분판 23~31분

통일의 빛과 그늘 — 점수를 매겨 보자

목표: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모두 짚고 아이 스스로 평가하게 한다. "역사는 한쪽 면만 보지 않는다"는 이 수업 전체의 사고 습관을 세우는 자리.

빛과 그늘, 그리고 나의 점수

▶ 진행 골격
  • 빛 ① 수백 년의 전쟁이 끝남 — 백성들이 처음으로 전쟁 없는 시대를 삶.
  • 빛 ② 세 나라 사람들이 한 나라 백성으로 섞임 — 언어·문화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출발점.
  • 그늘 ① 우리 힘만이 아니라 외국(당)의 힘을 빌림 — 그 대가로 전쟁을 한 번 더 치러야 했음.
  • 그늘 ② [고구려 최대 영토 vs 통일신라 지도 비교] 만주의 광활한 고구려 땅 대부분을 잃음.
  • 평가 활동: "신라의 통일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 왜?" — 정답 없음. 빛과 그늘을 둘 다 근거로 댄 아이를 크게 칭찬.
점수는 무엇이든 좋다. "70점이요, 하나가 됐지만 땅을 잃었으니까요"처럼 양면 근거가 나오면 "그게 바로 역사가처럼 생각하는 것"이라고 명명해 줄 것.
샘플 대본 펼치기 — 빛과 그늘 완성본

자, 통일이 됐어요. 박수 치고 끝내면 될까요? 역사는 그렇게 안 봐요. 역사는 항상 빛과 그늘을 함께 봐요. 오늘 그 연습을 해봅시다.

먼저 빛. 첫째, 전쟁이 끝났어요. 여러분, 삼국이 몇백 년을 싸웠다고 했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전쟁이었던 거예요. 그게 끝났어요. 아이들이 전쟁 걱정 없이 자랄 수 있는 시대가 처음 온 거예요. 이건 정말 큰 빛이에요. 둘째, 고구려 사람, 백제 사람, 신라 사람이 이제 한 나라 백성이 됐어요. 서로 섞여 살면서 말도 문화도 하나로 어우러지기 시작해요. 오늘날 '우리'라는 감각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제 그늘. 첫째, 우리 힘만으로 한 통일이 아니에요. 외국 군대를 끌어들였고, 그 대가로 나라를 통째로 잃을 뻔했다가 전쟁을 한 번 더 치러야 했죠. 둘째, 이게 제일 아픈 건데 — [지도 두 장 비교] 이 지도를 보세요. 왼쪽이 전성기(광개토대왕·장수왕 때) 고구려 땅, 오른쪽이 통일신라 땅. 어때요? [아이들: 작아졌어요!] 그렇죠. 만주의 그 넓은 벌판을 대부분 잃었어요.

자, 이제 여러분 차례예요. 여러분이 역사 심판관이라면, 신라의 통일에 몇 점을 줄래요? 그리고 왜? [여러 명 답 받기 — 점수보다 '이유'에 반응해 주기] 좋아요. 점수가 다 달라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방금 여러분이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둘 다 저울에 올렸다는 거예요. 한쪽 면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 것 — 그게 역사가의 눈이에요.

🌱 돌발질문 대비

"그래서 통일은 잘한 거예요, 못한 거예요?" → 단정하지 말 것. "그걸 저울질하라고 역사를 배우는 거예요. 선생님 답을 외우는 게 아니라 여러분 저울로 다는 것" — 이 수업의 철학을 그대로 답으로.

"만주 땅은 그럼 영영 잃은 거예요?" → "바로 다음 순서에 반전이 있어요." (발해로 즉시 연결 — 이 질문이 나오면 최고의 다리)

⑤ 강의 4 · 80분판 50~62분 · 50분판 31~40분

북쪽의 반전 — 고구려의 아들, 발해

목표: 발해 = 고구려 계승(증거: 스스로 '고려'라 칭한 국서)을 세우고, '남북국'이라는 이름의 의미(발해도 우리 역사)를 심는다.

㉮ 대조영, 폐허에서 새 나라를 세우다

▶ 진행 골격
  • 고구려 유민들의 이야기: 나라는 망했지만 사람들은 남았다 — 1차시(고조선 멸망 후)와 같은 구조!
  •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당의 추격을 뿌리치며 동쪽으로 대장정 → 698년 새 나라 건국 = 발해. [판서: 발해 — 대조영 (698)]
  • 결정적 증거: 발해가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에 스스로를 "고려(고구려) 국왕"이라 씀 — "우리는 고구려를 잇는 나라다"라는 공식 선언.
  • 전성기의 발해: 당나라조차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는 뜻의 해동성국이라 부름. 옛 고구려 땅 대부분을 회복.
'해동성국'과 영토 회복은 80분판 심화. 50분에서는 "고구려 후손이 세웠고, 스스로 고구려의 나라라고 선언했다"는 계승의 뼈대에 집중하세요. 그것이 남북국 논리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샘플 대본 펼치기 — 발해 건국 완성본

아까 지도에서 잃어버린 북쪽 땅 보고 마음 아팠죠? 반전이 있다고 했죠. 이제 그 이야기예요.

고구려가 망했을 때, 고구려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1차시에 고조선 망했을 때 뭐라고 했죠? 나라가 사라져도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똑같은 일이 벌어져요. 당나라는 고구려 사람들을 뿔뿔이 흩어 놓으려고 멀리 강제로 이주까지 시켰어요. 그런데 그 속에서 대조영이라는 지도자가 나타나요.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고, 뒤쫓아오는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면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대장정을 해요. 그리고 698년, 마침내 새 나라를 세워요. 그 나라가 발해예요. [판서: 발해 — 대조영 (698)]

그런데 발해가 진짜 고구려를 잇는 나라인지, 증거가 있을까요? 있어요. 그것도 아주 확실한 걸로요. 발해가 바다 건너 일본에 외교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에 자기 왕을 뭐라고 썼냐면 — "고려 국왕"이라고 썼어요. 그 시대에 '고려'는 고구려를 부르는 말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발해 스스로가 온 세상에 "우리는 고구려를 잇는 나라다"라고 공식 선언한 거예요. 남이 붙여준 이름이 아니라 자기 입으로요. 이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죠.

발해는 점점 강해져서 옛 고구려 땅을 대부분 되찾아요. 나중에는 당나라 사람들조차 발해를 해동성국 —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고 불러요. 적이었던 나라가 인정할 정도로 잘나갔다는 뜻이에요.

㉯ 그래서 이 시대의 이름은 — 남북국

▶ 진행 골격
  • 그림 정리: 남쪽에 통일신라, 북쪽에 발해 — 두 나라가 나란히. [판서: 남(통일신라) + 북(발해) = 남북국 시대]
  • 왜 이 이름이 중요한가: 발해를 우리 역사로 기억해야 북쪽 만주의 역사도 우리 역사가 됨 — "빛과 그늘에서 아팠던 '잃어버린 땅'이 발해로 이어진 것."
  • 확인 발문: "그럼 이 시대를 '통일신라 시대'라고만 부르면, 누가 빠지는 거죠?" → 발해!
샘플 대본 펼치기 — 남북국 완성본

자, 이제 지도를 다시 그려볼게요. 남쪽에는 통일신라. 북쪽에는 발해. [판서하며] 남쪽에 하나, 북쪽에 하나 — 그래서 이 시대를 남북국 시대라고 불러요.

이 이름이 왜 중요하냐면요. 아까 통일의 그늘에서 "만주 땅을 잃었다"고 마음 아파했잖아요. 그런데 그 땅에 고구려의 후손들이 발해를 세웠어요. 발해를 우리 역사로 기억하면, 그 북쪽 땅의 역사도 계속 우리 역사인 거예요. 그래서 이 시대를 '통일신라 시대'라고만 부르지 않고 남북국 시대라고 부르자는 거죠. 그렇게만 부르면 누가 빠져버리죠? [아이들: 발해요!] 맞아요. 이름 하나에 역사의 절반이 걸려 있는 거예요.

📘 강사용 배경지식 — 발해를 둘러싼 논쟁 (질문 방어선)
  • 발해 주민 구성: 지배층은 고구려 유민이 중심, 주민 다수는 말갈족. 그래서 중국은 "말갈족의 나라 = 중국 지방 정권"이라 주장합니다(동북공정). 우리 측 근거: ① 스스로 고구려 계승 표방(일본에 보낸 국서의 '고려국왕', 무왕이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했다"고 선언한 기록) ② 지배층·문화(온돌, 고구려식 기와·무덤 양식)의 고구려 연속성.
  • 아이가 "중국은 발해가 자기네 역사래요"라고 물으면: "발해 사람들 스스로가 '우리는 고구려를 잇는다'고 여러 번 밝혔어요. 당사자의 말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죠"가 초등 눈높이에서 가장 강한 답입니다. 감정적 비난보다 증거로 답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기회.
  • '남북국'이라는 용어: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이 『발해고』에서 "고려가 발해 역사까지 정리했어야 했다"며 제기한 관점이 뿌리이고, 현행 교과서가 채택한 표준 용어입니다.
  • '삼국통일'인가 '불완전 통일'인가: 학계에는 "고구려 대부분을 포함 못 했으니 불완전"이라는 시각과 "발해와 병립했으니 남북국으로 보자"는 시각이 공존합니다. 초등 수업은 "통일의 의의 + 남북국 병립" 양쪽을 모두 소개하는 지금 구성이 표준입니다.
⑥ 세계 한 스푼 · 80분판 62~67분 · 50분판 40~44분

신라의 수도까지 찾아온 파란 눈의 상인들

이슬람 세계와 아랍 상인 — "신라는 금이 많은 나라"

▶ 진행 골격
  • 통일신라가 한창이던 그때, 서쪽 아라비아에서는 이슬람 세계가 폭발적으로 성장 — 아시아·아프리카·유럽에 걸친 대제국.
  • 그 아랍 상인들이 배를 타고 바닷길로 — 신라까지 찾아옴. 아랍 학자의 책에 "신라는 금이 많고 살기 좋은 나라"라는 기록이 실제로 남아 있음.
  • 증거 유물: 서역인 얼굴을 한 경주 왕릉 앞 돌 조각상(통일신라기). 덧붙여, 그보다 훨씬 전(삼국시대) 경주 무덤들에서 서역 유리그릇이 나옴 — 신라는 일찍부터 서쪽 세계와 이어져 있었음.
  • 포인트: "천 년 전 경주는 세계 지도에 올라 있던 국제도시였다."
샘플 대본 펼치기 — 세계 한 스푼 완성본

세계 한 스푼 시간. 통일신라가 한창이던 그 무렵, 지구 서쪽에서는 새로운 거인이 태어나고 있었어요. 아라비아 사막에서 시작된 이슬람 세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까지 뻗은 거대한 제국이 된 거예요.

그런데 이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고요? 있어요, 그것도 아주 직접적으로요. 그 이슬람 세계의 아랍 상인들이 배를 타고 바닷길을 따라 동쪽으로, 동쪽으로 — 어디까지 왔냐면, 신라까지 왔어요! 진짜예요. 아랍 학자가 쓴 책에 이렇게 적혀 있어요. "신라라는 나라는 금이 많고, 한번 가면 떠나고 싶지 않은 나라다." 천 년 전에 지구 반대편 사람들이 신라를 알고 있었고, 심지어 살고 싶어 했다는 거예요.

말로만이 아니라 물건도 남아 있어요. 경주의 옛 왕릉 앞에는 눈이 깊고 코가 큰, 딱 봐도 서역 사람 얼굴을 한 돌 조각상이 서 있어요. 천 년 전 경주 거리에 파란 눈의 상인들이 걸어다녔다는 뜻이죠. 그리고 사실 신라는 그보다 훨씬 전부터 준비된 나라였어요 — 삼국시대의 경주 무덤들에서는 저 멀리 서역에서 건너온 유리그릇까지 나오거든요. 일찍부터 서쪽 세계와 이어져 있던 경주는, 그 시대 세계 지도에 올라 있던 국제도시였던 거예요.

📘 강사용 배경지식 — 이 짝짓기의 근거 (원본 시안에서 교체한 이유 포함)
  • 아랍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지바의 『도로와 왕국 총람』(9세기)에 신라(al-Sila)가 "금이 풍부한 나라"로 실제 언급됩니다("공기가 맑다"류 표현은 후대 다른 아랍 문헌들의 것이라 대본 인용에서는 뺐습니다). 아랍 상인 왕래의 유물 증거로는 원성왕릉(괘릉)으로 전하는 왕릉의 서역인 모습 무인석(8세기 말)이 적절합니다. ★주의: 경주 고분의 서역계 유리그릇(황남대총 등)은 5~6세기 부장품 — 이슬람 성립(622) 이전의 초원길 교류 증거라서 '아랍 상인의 물증'으로 쓰면 시대가 안 맞습니다. 대본처럼 "그 전부터 서역과 통해 있었다"는 배경으로만 쓰세요.
  • 이슬람력 원년 622년, 이후 1세기 만에 대제국 형성 — 통일신라(676~935)와 시기가 정확히 겹칩니다.
  • 원래 시안에는 이 자리에 바이킹(793~)이 있었는데, 시기는 겹치지만 우리 역사와 접점이 없습니다. 아랍 상인은 시기도 겹치고 신라에 실제로 왔다는 기록·유물까지 있어 "같은 시대 세계가 우리와 연결돼 있었다"는 코너 취지에 더 맞아 교체했습니다. 원장 시안과 다른 점이 궁금하시면 이렇게 설명하시면 됩니다.
⑦ 문제로 정리 · 80분판 67~78분 · 50분판 44~48분

개념서 빈칸 채우기 — 오늘의 핵심 고정

목표: 합창 → 기록. 오늘은 '두 단계 통일'과 '남북국'이 입에 붙는 것이 성공 기준.

개념서 빈칸

▶ 진행 골격
  • 1번 — 신라가 당과 손잡은 동맹의 이름은? 나당연합
  • 2번 — 백제·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신라군을 이끈 장군은? 김유신
  • 3번 — 당을 몰아내고 676년 통일을 완성한 왕은? 문무왕
  • 4번 —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북쪽에 발해를 세운 사람은? 대조영
  • 5번 — 남쪽의 통일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나란히 선 이 시대를? 남북국 시대
  • 6번 — 통일의 2단계: 당과 손잡기 → 당을 (몰아내기) — 그래서 '우리 통일'이 됨
  • 7번 — 발해가 일본에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를 부른 이름은? 고려(고구려) 국왕
50분판은 5문항. 7번(국서)은 어렵지만 "발해=우리 역사"의 결정적 증거라서, 고학년 반이라면 쓰기 대신 말로라도 꼭 확인하고 넘어가길 권합니다.
샘플 대본 펼치기 — 정리 진행 완성본

개념서 갑니다. 소리 먼저, 쓰기는 그다음. 1번! 신라가 당과 손잡은 동맹? [나당연합!] 2번! 백제·고구려를 무너뜨릴 때 신라군을 이끈, 가야 왕족의 후손인 장군? [김유신!] 3번! 당을 몰아내고 676년에 통일을 완성한 왕? [문무왕!]

4번!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북쪽에 새 나라 발해를 세운 사람? [대조영!] 5번! 남쪽에 통일신라, 북쪽에 발해 — 이 시대의 이름? [남북국 시대!]

도전 문제 갑니다. 6번! 통일은 두 단계 — 1단계는 당과 손잡기, 2단계는? [당을 몰아내기!] 그 2단계 덕분에 '우리 통일'이 된 거죠. 7번, 오늘의 결정적 증거! 발해가 일본에 보낸 편지에서 자기 왕을 뭐라고 불렀죠? [고려 국왕!] 이거 쓴 사람은 오늘 역사 재판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에요.

세 번째 도장 완성! 고조선 — 삼국 — 그리고 오늘, 통일신라와 발해까지 왔어요.

⑧ 마무리·예고 · 80분판 78~80분 · 50분판 48~50분

다음 시간 예고 — 'Korea'라는 이름의 시작

오늘 우리는 세 나라가 하나 되는 것을 봤고, 북쪽에 발해가 서는 것도 봤어요. 다음 시간엔 이 남북국 다음에 오는, 500년 가까이 이어질 큰 나라를 만납니다. 힌트 하나 줄게요 — 우리나라 영어 이름이 뭐죠? [아이: 코리아!] Korea. 그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 다음 시간에 밝혀집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
📘 이 차시 전체를 관통하는 한 문장 (수업 전 마음에 담아두실 것)
  • "오늘의 진짜 목표는 연도 암기가 아니라 두 개의 사고 습관 — ① 공짜 동맹은 없다(국제 관계의 첫 감각) ② 역사는 빛과 그늘을 함께 저울에 올린다(균형 평가). 나당연합→배신→나당전쟁의 서사가 ①을, 점수 매기기 활동이 ②를 심는 장치입니다."

3차시 문제은행 · 30제 (난이도 ★1 기초 ~ ★5 도전) + 예비 30제

용도★1~2 = 수업 중 문답·개념서 확인용(초3~4) · ★3 = 고학년 도전 문제 · ★4~5 = 강사님 준비용(학부모·상위권 아이의 어떤 질문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한 깊이). 수업에서 ★4~5를 직접 낼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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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초 — 초등 3~4학년 (수업 직후 전원 정답 목표)
1.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려고 당나라와 손잡은 동맹의 이름은?단답
정답·해설
나당연합. 신라(나)+당(당). "혼자 힘으로는 부족하니 힘센 남의 손을 빌린" 선택 — 이 차시의 첫 번째 열쇠말.
2.백제·고구려와의 통일 전쟁에서 신라군을 이끈 장군은?단답
정답·해설
김유신. 사실 2차시에 배운 가야 왕족의 후손 — 가야가 신라에 합쳐진 뒤 그 후손이 신라 최고의 장군이 된 것.
3.당나라를 몰아내고 676년에 통일을 완성한 신라의 왕은?단답
정답·해설
문무왕. 나당연합을 만든 김춘추(무열왕)의 아들. "아버지는 동맹으로 문을 열고, 아들은 전쟁으로 마무리했다".
4.고구려가 망한 뒤, 그 유민들이 북쪽에 세운 나라의 이름은?단답
정답·해설
발해. "나라는 망해도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 1차시 고조선 멸망 후와 똑같은 구조.
5.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발해를 세운 사람은?단답
정답·해설
대조영. 당의 추격을 뿌리치며 동쪽으로 대장정을 해 698년 발해를 세웠습니다.
6.(O/X) 신라는 혼자만의 힘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렸다.OX
정답·해설
X. 당나라와 손잡은 나당연합의 힘이었습니다. "혼자 힘으로였을까?"가 이 차시를 여는 질문.
7.남쪽의 통일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나란히 서 있던 이 시대를 무엇이라 부르나요?단답
정답·해설
남북국 시대. 남(통일신라)+북(발해). 이 이름을 써야 발해가 우리 역사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8.(O/X) 백제가 660년, 고구려가 668년에 무너졌다.OX
정답·해설
O. "육(6)백제, 육(6)팔 고구려" 정도로 순서만 기억하면 충분합니다(연도 암기는 초등 범위 밖).
예비예1.칼이 아니라 '말(외교)'로 나라를 구하려 당과 동맹을 맺은, 문무왕의 아버지는?단답
정답·해설
김춘추(훗날 태종 무열왕). 외교의 달인. 벼랑 끝 신라를 구하러 직접 외국으로 떠난 사람입니다.
예비예2.(O/X) 발해는 고구려의 후손(유민)이 세운 나라다.OX
정답·해설
O. 그래서 발해를 '고구려의 아들'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잃어버린 만주 땅에 세워진 반전의 나라.
예비예3.황산벌에서 5천 명의 결사대로 신라의 5만 대군에 맞선 백제 장군은?단답
정답·해설
계백. 네 번을 이기고 다섯 번째에 무너졌습니다 — "질 걸 알면서도 나라를 위해 싸운 장수"(패자의 품격).
예비예4.(O/X) 통일 뒤 신라는 만주의 넓은 고구려 땅을 대부분 잃었다.OX
정답·해설
O. 통일의 '그늘' 중 하나. 그 잃어버린 땅에 훗날 발해가 서면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예비예5.대조영이 발해를 세운 해는 언제인가요?단답
정답·해설
698년. 고구려가 망한(668) 지 30년 만에 그 후손이 새 나라를 세운 것.
예비예6.(O/X) 통일을 완성한 문무왕은 김춘추(무열왕)의 아들이다.OX
정답·해설
O. 아버지(김춘추)가 동맹을 맺어 전쟁을 열고, 아들(문무왕)이 당을 몰아내 마무리한 '부자 2대의 통일'.
★2 기본 — 초등 4~5학년 (개념서를 제대로 채웠다면 풀 수 있는 수준)
9.동맹이었던 당나라가 욕심을 내자, 신라가 당을 몰아내기 위해 벌인 전쟁의 이름은?단답
정답·해설
나당전쟁. "세상에 공짜 동맹은 없다" — 어제의 동맹에게 칼을 겨눈 이 2단계 덕분에 '우리 통일'이 되었습니다.
10.신라가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고 통일을 완성한 해는?단답
정답·해설
676년. 백제 멸망(660)·고구려 멸망(668)이 '1단계', 당을 몰아낸 676년이 '2단계 완성'.
11.백제와 고구려가 무너진 순서로 옳은 것은?객관식
  • ① 고구려(668) → 백제(660)
  • ② 백제(660) → 고구려(668)
  • ③ 두 나라가 같은 해에
  • ④ 신라가 먼저 무너졌다
정답·해설
② 백제(660) → 고구려(668). ① 순서를 뒤집은 오답 — 남쪽 백제를 먼저 치고, 8년 뒤 북쪽 고구려를 무너뜨렸습니다. ③ 8년의 시차가 있습니다(660 → 668). ④ 신라는 통일을 이룬 나라 — 무너진 쪽이 아닙니다.
12.발해가 일본에 보낸 외교 편지에서 자기 나라 왕을 무엇이라고 불렀나요? (발해가 고구려를 잇는다는 결정적 증거)단답
정답·해설
"고려(고구려) 국왕". 그 시대에 '고려'는 고구려를 부르던 말 — 발해 스스로가 "우리는 고구려를 잇는 나라"라고 공식 선언한 셈입니다.
13.(O/X) 당나라가 신라를 도운 것은 순수하게 신라가 불쌍해서였다.OX
정답·해설
X. 당도 고구려를 여러 번 치다 실패했기에, 신라와 협공하려는 '자기 이익'이었습니다. 그래서 뒤에 배신이 나옵니다.
14.김춘추가 도움을 청하러 맨 처음 찾아간 나라는 어디였나요? (당나라가 아님)단답
정답·해설
고구려. 그러나 옛 땅 반환 요구로 협상이 깨져 갇혔다가, 꾀를 내어 빠져나온 뒤 당과 손잡았습니다.
15.통일신라가 한창일 때, 바닷길로 경주까지 찾아와 활발히 교역한 서쪽 상인들은?객관식
  • ① 바이킹
  • ② 아랍(이슬람) 상인
  • ③ 몽골 상인
  • ④ 로마 군인
정답·해설
② 아랍(이슬람) 상인. 이들의 왕래로 '신라는 금이 많은 나라'라는 정보가 서쪽에 전해져 아랍 학자의 책에까지 기록됐습니다(기록을 직접 남긴 건 상인이 아니라 그 정보를 모은 지리학자 — ★4 예비 참고). 이슬람 세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와 통일신라가 겹칩니다. ① 바이킹 — 시기는 비슷하지만 우리 역사와 만난 접점(기록·유물)이 없습니다. ③ 몽골 — 훨씬 뒷시대(고려). 아직 등장 전. ④ 로마 — 이 무렵 서로마는 이미 멸망(2차시). 시대가 맞지 않습니다.
예비예1.이 시대를 '통일신라 시대'라고만 부르면 어느 나라가 역사에서 빠져 버리나요?단답
정답·해설
발해. 그래서 '남북국 시대'라고 불러야 남과 북 두 나라가 모두 우리 역사로 남습니다.
예비예2.(O/X) 신라는 세계 최강이던 당나라를 상대로 싸워 결국 한반도에서 몰아냈다.OX
정답·해설
O. 7년을 끈 나당전쟁 끝에 당군을 축출(676). 당에겐 '남의 땅 전쟁'이었지만 신라에겐 '지면 끝나는 전쟁'이라 이겨낸 것.
예비예3.신라 통일의 두 단계 순서로 옳은 것은?객관식
  • ① 당을 몰아냄 → 당과 손잡음
  • ② 당과 손잡아 백제·고구려를 무너뜨림 → 그 당을 몰아냄
  • ③ 발해를 세움 → 당과 손잡음
  • ④ 고구려를 도움 → 백제를 도움
정답·해설
② 당과 손잡아 백제·고구려를 무너뜨림 → 그 당을 몰아냄. ① 앞뒤가 뒤바뀜 — 먼저 손잡고, 나중에 몰아냅니다. ③ 발해는 신라의 통일 단계와 무관하게 북쪽에 따로 선 나라. ④ 신라가 백제·고구려를 '도운' 것이 아니라 '무너뜨린' 것.
예비예4.660년 나당연합군의 백제 공격 때 신라군 총사령관은 누구였나요?단답
정답·해설
김유신. 황산벌에서 계백의 결사대와 맞선 그 전투의 신라 쪽 지휘관입니다.
예비예5.(O/X) 신라 최고의 장군 김유신은 원래 가야 왕족의 후손이다.OX
정답·해설
O. 2차시에 배운 가야가 신라에 흡수된 뒤, 그 후손이 통일 전쟁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 "뭉쳐진 가야"의 회수.
예비예6.당나라조차 발해를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는 뜻으로 부른 말은?단답
정답·해설
해동성국(海東盛國). 옛 고구려 땅을 대부분 되찾을 만큼 강해져, 적이었던 당나라조차 인정했다는 뜻(80분판 심화).
예비예7.발해가 잇는다고 스스로 밝힌 나라는?객관식
  • ① 백제
  • ② 신라
  • ③ 고구려
  • ④ 가야
정답·해설
③ 고구려. 일본에 보낸 국서에 '고려(고구려) 국왕'이라 썼습니다. ① 백제 — 660년에 이미 멸망, 발해와 계승 관계가 없습니다. ② 신라 — 남쪽의 다른 나라. 발해와 남북으로 병립. ④ 가야 — 훨씬 전에 신라에 흡수된 나라.
★3 응용 — 초등 고학년~중학생 ("왜?"를 묻는 문제들. 수업의 사고 확장용)
16.당나라가 신라를 도와 나당연합에 응한 진짜 까닭을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당도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싶었기 때문(자기 이익). 여러 번 쳐들어갔다 막혔던 당이 신라와 남북 협공을 노린 것 — "세상에 공짜 동맹은 없다"의 근거.
17.신라의 통일을 '두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2단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말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1단계: 당과 손잡아 백제·고구려를 무너뜨림 / 2단계: 욕심낸 당을 몰아내 완성. 2단계가 없었다면 한반도 전체가 당나라 땅이 됐을 수 있음 — 그래서 이게 '우리의 통일'이 된 것.
18.발해가 고구려를 잇는 나라라는 '결정적 증거'는 무엇인가요?서술
정답·해설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에 자기 왕을 '고려(고구려) 국왕'이라고 스스로 적은 것. 남이 붙여준 이름이 아니라 당사자가 직접 밝힌 것이라 가장 강한 증거입니다.
19.신라 삼국통일의 '빛'과 '그늘'을 각각 하나씩 들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빛: 수백 년 전쟁이 끝남 / 세 나라 사람이 한 백성으로 섞임. 그늘: 외국(당)의 힘을 빌림 / 만주의 넓은 고구려 땅을 잃음. 빛·그늘을 둘 다 저울에 올리는 것이 '역사가의 눈'.
20.이 시대를 굳이 '남북국 시대'라고 불러야 하는 까닭을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발해를 우리 역사로 기억해야 북쪽 만주의 역사도 우리 역사가 되기 때문. '통일신라 시대'라고만 하면 발해가 빠짐 — "이름 하나에 역사의 절반이 걸려 있다".
21."세상에 공짜 동맹은 없다"는 말이 나당연합에서 어떻게 사실로 드러났는지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당이 도운 대가로 백제·고구려 옛 땅은 물론 신라 땅까지 차지하려 했고, 그래서 신라가 당과 다시 싸워야 했다(나당전쟁). 도움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국제 관계의 첫 감각.
22."나라는 망해도 사람과 문화는 이어진다"는 원리를, 1차시(고조선)와 오늘(발해)을 견주어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고조선이 망한 뒤 유민이 여러 나라로 이어졌듯, 고구려가 망한 뒤에도 그 유민이 발해를 세워 이어졌다. '멸망 ≠ 단절'이라는 이 수업 전체를 관통하는 관점.
예비예1.김춘추가 고구려에 갇혔을 때 '토끼의 간' 이야기로 꾀를 얻어 탈출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누구이고, 김춘추는 어떻게 빠져나왔나요?서술
정답·해설
고구려의 한 신하(선도해)가 귀띔해 주었고, 김춘추는 "돌아가면 그 땅을 돌려드리겠다"고 약속하는 척해서 풀려났다. 별주부전과 이어지는 이야기 — 이야기를 들려준 쪽이 고구려 신하(김춘추가 아님)라는 점에 유의.
예비예2.계백의 5천 결사대 이야기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서술
정답·해설
질 것을 알면서도 나라를 위해 끝까지 물러서지 않은 '패자의 품격'. 이긴 쪽뿐 아니라 진 쪽의 마음도 함께 보는 것 — 균형 잡힌 역사 보기의 연습.
예비예3.천 년 전 경주가 '세계 지도에 오른 국제도시'였음을 보여주는 근거를 하나 들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아랍 학자의 책에 신라가 '금이 많은 나라'로 기록됨 / 경주 왕릉 앞에 서역인 얼굴을 한 돌 조각상(무인석)이 남아 있음. 지구 반대편 사람들이 신라를 알고 찾아왔다는 증거.
예비예4.중국의 대군도 여러 번 막아낸 강한 고구려가 668년에 무너진 결정적 약점은 무엇이었나요?서술
정답·해설
오랜 전쟁에 지친 데다, 지도자들이 자기들끼리 편을 갈라 싸운 내부 분열. "밖에서 두들기는 것보다 안에서 갈라지는 게 더 무섭다"는 교훈.
예비예5.세계 최강 당나라를 상대로 신라가 이길 수 있었던 까닭을, 두 나라에게 이 전쟁이 어떤 의미였는지로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당에게는 '멀리 남의 땅에서 하는 전쟁'이었지만, 신라에게는 '지면 나라가 끝나는 전쟁'이었기 때문(절박함의 차이). 자기 땅을 지키려는 쪽의 각오가 승패를 갈랐습니다.
예비예6.삼국시대 경주 무덤의 서역 유리그릇과, 통일신라 때 찾아온 아랍 상인 — 시대는 다르지만 이 둘이 신라에 대해 공통으로 말해 주는 것은?서술
정답·해설
신라가 일찍부터, 그리고 오랫동안 서쪽 세계와 이어져 있었다는 것. (단, 유리그릇은 아랍 상인의 물증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의 교류 흔적이라는 점을 구분해야 합니다 — ★5·심화 참고.)
예비예7.김유신을 "평생을 바쳤지만 마지막 장면은 못 본 장군"이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서술
정답·해설
660년 백제 정벌 때 이미 66세의 노장이었고, 통일이 완성되기 전인 673년에 세상을 떠나 676년 통일 완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 한 사람의 일생보다 긴 시간에 걸쳐 역사가 이뤄진다는 여운.
★4 심화 — 중학~고1 수준 (강사 준비용. 상위권 아이·학부모 질문 방어선)
23.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는 우리 측 근거로 알맞은 것을 모두 고르세요.객관식
  • ㄱ. 일본에 보낸 국서에 스스로 '고려(고구려) 국왕'이라 씀
  • ㄴ. 온돌·고구려식 기와와 무덤 양식이 이어짐
  • ㄷ. 주민의 다수가 말갈족이었다
  • ㄹ.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했다"고 선언한 기록이 있음
정답·해설
ㄱ, ㄴ, ㄹ. ㄱ (○) — 당사자의 자기표방. 가장 강한 근거. ㄴ (○) — 온돌 등 고구려 문화의 연속성. ㄷ (✕) — 주민 다수가 말갈족이었다는 점은 오히려 중국이 "말갈의 나라=중국 지방정권"이라 주장하는 근거(동북공정)입니다. 지배층과 문화가 고구려를 이었다는 것이 핵심이라, 이 선지는 '계승 근거'가 아닙니다. ㄹ (○) — 무왕이 고구려 옛 땅 회복을 선언한 기록.
24.당이 신라 땅까지 자기 통치 구역(계림도독부)으로 삼으려 한 일이, 신라의 결단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신라를 아예 당나라의 한 지방처럼 취급한 것이라, 신라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당과 전쟁(나당전쟁)을 벌이기로 결단하게 만들었다. 배신의 결정타가 곧 자주적 통일의 출발점이 된 셈.
25.의자왕의 '삼천궁녀'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다루면 안 되는 까닭을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훨씬 뒷시대에 지어져 부풀려진 이야기라 역사 기록으로는 근거가 없기 때문. 의자왕은 젊을 때 신라를 벼랑까지 몬 유능한 왕이었음 — 낙화암 '전설'과 '사실'을 구분하는 사료 비판의 좋은 예.
26.문무왕의 무덤(대왕암)을 수업에서 "수중릉으로 전해진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 좋은 까닭은?서술
정답·해설
바닷속 무덤(수중릉)인지, 유골을 뿌린 곳인지 학계에 논쟁이 있어 단정할 수 없기 때문. "죽어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은 전하되, 무덤의 성격은 열어 두는 것이 정확합니다.
27.'남북국'이라는 용어의 뿌리가 된, "고려가 발해 역사까지 정리했어야 했다"고 주장한 조선 후기 실학자와 그 책은?단답
정답·해설
유득공, 『발해고』. 발해를 우리 역사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관점의 출발점이자, 현행 교과서가 채택한 표준 용어의 근거.
예비예1.9세기 아랍 지리학자 이븐 쿠르다지바의 책이 신라에 대해 남긴 기록과, 그것이 지니는 의미를 서술하세요.사료·서술
정답·해설
신라(al-Sila)를 '금이 풍부한 나라'로 언급했다. 지구 반대편 아랍 세계에까지 신라가 알려질 만큼 통일신라·경주가 국제 교역망에 이어진 도시였음을 보여줍니다("공기가 맑다"류 표현은 후대 다른 문헌의 것이라 함께 인용하면 부정확).
예비예2."발해는 중국의 역사"라는 주장(동북공정)에 맞설 때, 초등 눈높이에서 가장 강한 반박은 무엇일까요?서술
정답·해설
"발해 사람들 스스로가 '우리는 고구려를 잇는다'고 여러 번 밝혔다 — 당사자의 말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다." 감정적 비난이 아니라 증거로 답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핵심.
예비예3.663년 백강 전투는 삼국통일 전쟁이 '한반도 내전'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전'이었음을 어떻게 보여주나요?서술
정답·해설
백제 부흥군에 왜(일본)까지 군대를 보내 나당연합군과 맞선 전투라, 신라·당·백제·왜 네 세력이 얽힌 국제전이었음을 보여준다. 통일 전쟁이 동아시아 전체가 개입한 사건이었다는 증거.
예비예4.신라의 통일을 두고 '불완전 통일'이라는 시각과 '남북국으로 보자'는 시각이 있습니다. 각각을 설명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불완전 통일'은 고구려 땅 대부분을 포함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주목하는 시각이고, '남북국'은 북쪽에 발해가 병립했으니 두 나라가 함께한 시대로 보자는 시각이다. 교과서는 통일의 의의와 남북국 병립을 모두 소개합니다.
예비예5.나당전쟁에서 신라가 당군을 몰아낸 대표적인 육지·바다의 두 승리를 각각 무엇이라 하나요?단답
정답·해설
매소성 대첩(675, 육지) · 기벌포 해전(676, 바다). 지명 자체는 초등 범위 밖(중학교에서 만남)이지만, 이 두 승리로 당군을 완전히 축출했습니다.
예비예6.발해의 주민 구성을 설명하고, 그럼에도 발해를 고구려 계승국으로 보는 근거를 말해 보세요.서술
정답·해설
지배층은 고구려 유민이 중심, 주민 다수는 말갈족이었다. 그럼에도 스스로 고구려 계승을 표방했고(국서), 온돌·기와·무덤 등 고구려 문화가 이어졌기에 계승국으로 본다. '누가 다스리고 어떤 문화를 이었나'가 판단 기준.
★5 도전 — 고교·수능 한국사 수준 (여기까지 알고 계시면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28.신라 삼국통일의 '의의(빛)'와 '한계(그늘)'를 각각 두 가지씩 들어 균형 있게 평가하세요.서술
정답·해설
의의: ① 수백 년의 전쟁을 끝내 백성이 처음으로 평화의 시대를 삶 ② 세 나라 사람들이 한 백성으로 어우러져 '우리'라는 감각의 출발점이 됨. 한계: ① 외세(당)의 힘을 빌려 자주성에 흠이 남 ② 만주의 고구려 땅 대부분을 잃음.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고 저울에 함께 올리는 것이 이 문제의 목적.
29."고구려는 중국의 침입을 막아낸 방패였다"는 관점에서, 고구려 멸망이 이후 우리 역사에 남긴 무게를 서술하세요.서술
정답·해설
수·당의 대군을 여러 번 막아낸 고구려가 사라지면서 대륙을 향한 방파제가 없어졌고, 만주라는 넓은 활동 무대를 잃는 시작점이 되었다 — 다만 그 땅에 발해가 서면서 일부가 이어졌다. 통일의 '그늘'을 세계사적 크기로 확장한 평가.
30.나당연합 → 배신 → 나당전쟁의 흐름이, 2차시 한강 쟁탈(나제동맹 → 배신)과 같은 구조임을 밝히고, 여기서 끌어낼 수 있는 국제 관계의 원리를 서술하세요.서술
정답·해설
백제-신라가 손잡아 한강을 되찾은 뒤 신라가 배신했듯(2차시), 신라-당이 손잡아 백제·고구려를 무너뜨린 뒤 당이 배신했다(3차시). 나라 사이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으며, 동맹과 배신은 이익에 따라 반복된다. 두 차시를 관통하는 '국제 관계의 원리'.
예비예1.'통일신라 시대'로 부르느냐 '남북국 시대'로 부르느냐가, 만주의 역사가 누구의 역사가 되는지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서술하세요.서술
정답·해설
'남북국'으로 부르면 발해가 우리 역사에 포함되어 그 무대인 북쪽 만주의 역사도 우리 역사가 되지만, '통일신라'로만 부르면 발해와 그 땅의 역사가 통째로 빠져 버린다. 역사를 어떻게 이름 붙이느냐가 곧 무엇을 우리 것으로 기억하느냐를 결정한다는 것.
예비예2.경주 고분의 서역 유리그릇을 '아랍 상인이 가져온 물증'으로 설명하면 왜 시대가 맞지 않는지, 연대를 들어 설명하세요.서술
정답·해설
유리그릇은 5~6세기(삼국시대) 부장품인데, 아랍 상인의 왕래는 이슬람이 성립(622)한 뒤인 통일신라기의 일이다. 즉 유리그릇은 이슬람 이전, 초원길을 통한 더 이른 교류의 흔적이므로 '아랍 상인의 물증'으로 쓰면 시대착오다. 같은 '서역 교류'라도 시기와 경로를 구분해야 정확합니다.
예비예3.'역사는 빛과 그늘을 함께 저울에 올린다'는 태도가, 어느 한쪽만 보는 것보다 왜 더 '역사가의 눈'에 가까운지 서술하세요.서술
정답·해설
빛만 보면 미화(선전)가 되고 그늘만 보면 비난이 되어, 둘 다 사실의 절반만 담는다.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함께 근거로 대고 저울질할 때 비로소 균형 잡힌 판단에 이르기 때문이다. 판단의 '결론'보다 양면을 다는 '과정'을 기르는 것이 역사 교육의 목적.
예비예4.삼국통일 전쟁이 '한반도 안의 싸움'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전'이었음을, 구체적 사건을 근거로 논증하세요.서술
정답·해설
당이 신라와 연합해 참전했고(660·668), 왜(일본)가 백제를 도와 백강 전투(663)에 군대를 보냈으며, 전쟁 뒤 당의 야욕으로 나당전쟁(676)까지 벌어졌다 — 신라·당·백제·고구려·왜의 이해가 얽힌 국제전이었다. 여러 나라가 자국 이익을 걸고 개입한 사건이라는 점이 논증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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